목록국어국문학, 풍월을 읊다 (60)
adikastos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면공간에 대한 천착은 지속적인 주제였으며, 다양하게 변주되는 불 이미지가 정지용 문학의 이러한 연속성을 뒷받침한다는 것이 본고의 주장이다. 그러나 연속성을 중시한다고 해서 각기 다른 경향들 사이의 전환 지점을 논외로 치부할 수는 없다. 초기에서 후기로의 이행을 ‘바다→산’206)의 이행이나 ‘감각→기억’207)의 이행으로 바라보는 관점들을 적극적으로 참고해야 한다. 2장에서 논한 정지용의 시론에 의하면, 내면공간이란 내적 에너지가 응축 205) 신범순, 「정지용 시에서 ‘詩人’의 초상과 언어의 특성」, 148쪽. 206) “이후 바다에서 산으로 소재가 이동하면서 산수시 계열의 시들이 씌어진다. 감각에서 정신에로의 변전이 그것이다.” 최동호, 『하나의 도에 이르는 시학』. 160쪽. 2..
바슐라르 에게도 ‘불’은 단순한 상상력이 아니라 시 쓰기의 실존적 원동력이 되며(이 것이 바슐라르가 제시한 ‘몽상’ 개념의 요체일 것이다.), 바슐라르 역시 이를 불사조(피닉스)의 부활 이미지로 치환한다. 사실, 피닉스는 시 안에서, 시에 의해, 시를 위해, 끊임없이 살고 죽으며, 다 시 태어난다. 그 시적 형태는 다양하고 새롭기 그지없다. (…중략…) 그리고, 새로운 시인에게는 새로운 피닉스, 경이로운 불사조적 존재가 상응한다고 나는 확신한다. 201) ― 가스통 바슐라르, 「서론」, 『불의 시학의 단편들』202) 일부 201) Bachelard, Gaston, 『불의 시학의 단편들』, 안보옥 역, 문학동네, 2004, 78쪽. 202) 원제: Fragments d’une Poétique du Feu,..
두 그림은 서로 거울상을 이루면서 마치 마주보는 천사 가운데로 성화(聖火)의 불길이 모아지는 것만 같은 시각적 효과를 불러일으킨다. 성화(聖 火) 위에는 ‘거룩하다’는 뜻의 라틴어 ‘SANCTUS’가 적혀있다. 이 시들은 또한 제목으로도 각각 ‘다른 하늘’과 ‘다른 태양’을 가리키며, 대응 관계에 있는 작 품임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이는 의도가 담긴 일종의 ‘기획적’ 편집이 라고 볼 수밖에 없으며, 정지용은 『가톨릭청년』 편집의 전권자로서 이 기획을 전두지휘했을 것이다. 이미지 출처는 『정지용 전집 3: 원문시집』, 195~196쪽. 198) 원작 그림은 다음과 같다. - 97 - 그린 정물화로 추측된다. 199) 이 시기의 정물화들은 피카소가 점차 입체파 (큐비즘) 화풍에서 벗어나 초현실주의에 ..
즉 ‘아이-불-나(어른 화자)’의 공간은 시적 주체에게 안온함과 시적 숙명을 안겨주는 것에 더하여, 신성성을 체현(體現)하게끔 한다. 그러나 이러한 영혼의 높이가 하필이면 초기 주제에서의 ‘불’을 포기하지 않은 채로 사유되는지 아직 충분히 논의하지 못했다. 종교 시편에서는 영혼 의 ‘높이’와 불의 ‘내재함’이 공존하는 기묘한 현상이 일어난다. 사뭇 달라보 이는 두 가지의 방향성(‘위’[高]와 ‘안’[內])이 의미하는 바는 다음 두 작품 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188) 『개벽』, 1925.5 - 92 - 비애(悲哀)! 너는 모양할수도 업도다. 너는 나의 가장 안에서 살엇도다. 너는 박힌 활살, 날지 안는 새, 나는 너의 슬픈 우름과 아픈 몸짓을 진히노라. 너를 돌녀보낼 아모 이웃도 찻지 못하엿노라. 은..
그러나 「무제」의 “나의 령혼안의 고흔불”은 상징에 기댄 기호라기보다 는, 정지용이 초기 시편부터 붙잡고 있었던 ‘내재(內在)하는 불’ 기호의 종 교적 연장으로 보아야 한다. 3.1.에서 상세시 서술했듯 정지용의 시적 주체 가 아이 몸 안에 깃든 일종의 ‘에너지’로서 석탄불을 발견하기 위해서는 그 전에 먼저 자신의 몸 안에 항존하고 있는 불과 열기를 발견하는 작업이 선 행되어야 했었다. 종교 시편에서는 불을 발견하는 시선이 다시 자신에게로 향한다. 이는 앞서 말한 「유리창」과 「유리창·2」 사이에 보이는 시선의 184) 전술했듯 정지용 종교 시편이 지나치게 직설적이거나 가톨릭 요소의 이질성 이 해결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지적되는 점을 고려하면, 「무제」는 가톨릭교를 연상시키는 시어를 직접 노출하지 않으면서..
나지익 한 한울은 白金비츠로 빛나고 물결은 유리판 처럼 부서지며 끌어오른다. 동글동글 굴러오는 바람에 뺨마다 고흔피가 고이고 배는 華麗한 김승처럼 지스며 달녀나간다. ― 「갑판(甲板)우」176) 일부 나 는 차창 에 기댄 대 로 옥톡기처럼 고마운 잠 이나 들 자. 靑 만틀 깃 자락 에 매담 R의 고달핀 이 붉으레 피여 잇다. 고흔 石炭불 처럼 익을거린다. (…중략…) 나 는 유리 에 각갑한 입김 을 비추어 내 가 제일 조하 하는 일음이나 그시며 가 자. ― 「슬픈기차」177) 일부 이 알몸을 끄집어내라, 때려라, 부릇내라 나는 熱이 오른다, 뺨은 차라리 戀情스레이 유리에 부빈다. 차듸찬 입마침을마신다 176) 『문예시대』 2호, 1927.1. 177) 『조선지광』 67호, 1927.5. - 85 ..
이의 ‘발열’하는 몸에서 추출해낸 것 같다. 느리잇 느리잇 한눈파는 겨를 에 사랑이 수히 알어질가 도 십구나. 어린아이 야. 달녀가자. 두뺨 에 피어오른 어엽븐 불이 일즉 꺼저버리면 엇지 하자니? 줄 다름질 처 달녀가자. (…중략…) 어린아이 야, 아무것도 몰으는 샛밝안 기관차 처럼 달녀가자. (강조: 인용자) ― 「샛밝안기관차(機關車)」170) 「샛밝안기관차」에서는 “어린아이”와 “샛밝안 기관차”가 동일시되고 있 는데, 왜냐하면 이들은 “두뺨 에 피어오른 어엽븐 불”이 꺼져버릴까봐 “줄 다름질 처 달녀가”야 하는 숙명을 공유하기 때문이다. 서로 멀지 않은 시기 에 발표된 세 시편 「파충류동물」(1926.6.)과 「샛밝안기관차」(1927.2.) 그리고 「슬픈기차」(1927.5.)는 ‘기차’라는 같은 소재..
물론 후자는 작품을 발표하는 데에 있어서 그다지 자연스러운 정황은 아니다. 아직까지는 「딸레(人形)와아주머니」를 1924년작으로 보는 편이 더 타 당하다. 161) 정지용과 윤복진이 당시 교류했다는 직접적인 근거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그러나 해방 직후 조선문학가동맹 아동문학부에서 각각 위원장과 사무장을 지 낸 것으로 보아,(『아동문학과 비평정신』(원종찬) 307~309쪽 참고.) 적어도 두 사람은 아동문학계의 대표자로서 서로의 존재를 오랫 동안 알고 있었을 것이 다. 162) 박태준 작곡집 『중중 때때중』을 소개한 『동광(東光)』의 어느 기사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윤복진군의 동요는 널리 알리워 잇다. 『중중떼떼중』이란 이 동요집의 이름 만 보아도 알 수 잇게 그의 조선적 동요의 포촉(捕促)은 매우 ..
시가 쓰인 1927년은 아직 박용철이 정지용과 만나기 전이다. 149) 이숭원, 「정지용 시 「琉璃窓」 읽기의 반성」, 『문학교육학』 Vol.16, 한국문 학교육학회, 2005. 150) 다만 당시에 ‘동시’라는 장르 범주는 ‘동요’와 혼용되고 있었기 때문에, 정지 용을 계속 ‘동시 시인’으로 명명하는 데에는 문제가 있다. 작품성이 인정된 동 시에 곡조를 붙이면 그것이 곧 동요가 되었던 셈이다. 정지용도 ‘동시’가 아니 라 ‘동요’라는 표제를 쓰고 있기에, 이 글에서는 정지용의 동시를 ‘동요 시편’ 으로 통칭하기로 한다. 후술하겠지만, 동요 발흥 운동과 정지용 사이의 밀접한 관계 역시 그가 자신의 시편들을 ‘동요’로 자각하고 있었음을 방증해주기 때문 이다. 151) 최현식, 「‘어린 아이’의 전통과 근대..
감각적인 모더니즘 경향, 바다 이미지, 동요 시편 등 여러 측면들이 부각된 가운데 방/집 의 기호는 그동안 충분히 주목되지 못했다. 김종태가 초기 시편에 나타나는 주요 공간이 “안온한 집”이라는 점을 유의미하게 지적했으나, 구체적인 분 석이 뒤따르지는 않았고 ‘집은 외부 세계로 나아가기 위한 공간적 거점’이 라는 원론적인 논의에 그치고 있다. 141) 그보다 정지용에게 방/집이란 공간이 어떻게 시적 공간으로 ‘변용’되는지 에 더욱 주안점을 두어야 한다. 이때 방/집은 많은 경우 ‘불이 피어오르는 따뜻한 곳’으로 표현되는데, 여기서 정지용 시편에서 매우 특징적이라 할 수 있는 일상적 불 이미지의 반복이 발생한다. “숯불”로 대표되는 이러한 140) 예컨대 조선 문단에 공식적으로 데뷔한 일련의 『학조』 수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