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ikastos
종교 시편의 시적 주체와 숙명 그리고 공간, 신성성 체현 본문
즉 ‘아이-불-나(어른 화자)’의 공간은 시적 주체에게 안온함과 시적 숙명을 안겨주는 것에 더하여, 신성성을 체현(體現)하게끔 한다. 그러나 이러한 영혼의 높이가 하필이면 초기 주제에서의 ‘불’을 포기하지 않은 채로 사유되는지 아직 충분히 논의하지 못했다. 종교 시편에서는 영혼 의 ‘높이’와 불의 ‘내재함’이 공존하는 기묘한 현상이 일어난다. 사뭇 달라보 이는 두 가지의 방향성(‘위’[高]와 ‘안’[內])이 의미하는 바는 다음 두 작품 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188) 『개벽』, 1925.5 - 92 - 비애(悲哀)! 너는 모양할수도 업도다. 너는 나의 가장 안에서 살엇도다. 너는 박힌 활살, 날지 안는 새, 나는 너의 슬픈 우름과 아픈 몸짓을 진히노라. 너를 돌녀보낼 아모 이웃도 찻지 못하엿노라. 은밀히 이르노니― 「행복」이 너를 아조 실허하더라. 너는 진짓 나의 심장(心臟)을 차지하엿더뇨? 비애(悲哀)! 오오 나의 신부(新婦)! 너를 위하야 나의 창(窓)과 우슴을 다덧 노라. 이제 나의 청춘이 다한 어늬날 너는 죽엇도다. 그러나 너를 무든 아모 석문(石門)도 보지 못하엿노라. 스사로 불탄 재에서 나래를 펴는 오오 비애(悲哀)! 너의 불사조(不死鳥) 나의 눈물이여! ― 「불사조(不死鳥)」189) 전문 얼골이 바로 푸른 한울을 우러럿기에 발이 항시 검은 흙을 향하기 욕되지 안토다. 곡식알이 걱구로 러저도 싹은 반듯이 우로! 어느 모양으로 심기여젓더뇨? 이상스런 나무 나의 몸이여! 오오 알맞은 위치(位置)! 조흔 우 아래! 아담의 슬픈 유산(遺産)도 그대로 바덧노라. 나의 적은 연륜(年輪)으로 이스라엘의 이천년(二千年)을 헤엿노라. 189) 『가톨릭청년』 10호, 1934.3 - 93 - 나의 존재는 우주의 한낫 초조(焦燥)한 오점(汚點)이엇도다. 목마른 사슴이 샘을 차저 입을 잠그다시 이제 그리스도의 못박히신 발의 성혈(聖血)에 이마를 적시며― 오오! 신약(新約)의 태양을 한아름 안다. ― 「나무」190) 전문 「불사조」와 「나무」는 1934년 3월 『가톨릭청년』 10호에 나란히 발 표되었다. 그런데 이 두 작품은 여러모로 유사함을 보일 뿐만 아니라, 당시 같은 지면에 수록되는 방식 면에서도 상당히 의미심장하다. 이에 관해서 먼 저 『가톨릭청년』이 정지용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고, 더불어 중기 시편을 ‘종교 시’로 규정하는 전통의 정당성도 검토해보 고자 한다. 정지용은 매일신보에 기고한 「직히는밤이애기」191)라는 산문에서 『가톨 릭청년』 창간이 결정된 경위192)를 손수 밝힌 바 있다. 『가톨릭청년』의 주요 편집진(정지용 포함)으로 보이는 사람들을 익명으로 표기193)하고, 이들 의 대화를 재구성한 방식이어서 흥미롭게 읽히는 글이다. 이들은 새로운 잡 지를 ‘종교’, ‘사회’, ‘취미’ 중 어떠한 카테고리를 본위로 할 것인지 토론하 다가 결국 ‘문학’을 택하기로 한다. P, 『결론으로 취미론(趣味論) 불찬성(不贊成)!』 C, 『가톨릭적이면 벌서 결정되여잇다』 Y, 『교회월보식(敎會月報式)이 가톨릭적은 아니다』 C, 『누가보기나하나』 Y, 『비판(批判)과문학(文學)을 중심으로할수박게』 190) 『가톨릭청년』 10호, 1934.3 191) 『매일신보』, 1933.6.8 192) 이 산문은 『가톨릭청년』 창간호가 발간되기 이틀 전에 발표되었다. 193) 인물의 정체를 아예 가늠하기 힘든 익명은 아니고, ‘Y, C, R, S, P’ 등의 알파벳 이니셜로 표기했다. 이 중 ‘Y’가 정지용으로 추측되나 확실하진 않다. - 94 - ― 「직히는밤이애기」 즉 정지용이 야심 차게 준비한 『가톨릭청년』은 그 이름과 달리 ‘종교 본위’를 오히려 지양하고 ‘비평 및 문학 중심’을 향해 있었다. 그에게 가톨 릭과 문학은 서로를 저해하는 상호 장애물이 아니었다. 고로 중기 시편이 종교에 편향되어 문학으로서의 자질을 잃어버렸다는 관점194)은 재고할 여지 가 있다. 『가톨릭청년』에 게재된 시를 모두 ‘종교 시’로 분류하던 관습도 의심해보아야 한다. 195) 『가톨릭청년』은 단순히 정지용의 열렬한 신앙심이 반영된 가톨릭교 기관지가 아니라, 문학적 야심으로 추동되는 프로젝트 성 격의 문예지에 가깝다. 따라서 『가톨릭청년』에 나타난 글과 그림의 편집 및 배치 방식은 정지용이 전권을 잡고 주도한 결과로 추측해볼 수 있다. 특 히 자신의 시를 게재하는 방식에서 정지용의 미의식이 두드러지는데, 텍스 트와 그림을 조화롭고 균형 있게 배치하는 것에 강박적일 정도로 집착을 보 이기 때문이다. 「불사조」와 「나무」가 대표적인 사례다. 이들 시편의 『가톨릭청년』 게재 당시 주목되는 지점들 몇 가지를 정리 해보면 다음과 같다. 194) 대표적으로 김윤식은 정지용 시가 “가톨릭적인 것에 기울면 그럴수록 실패” 한다고 단정한 바 있다. 김윤식, 『한국근대문학사상사』, 한길사, 1984, 432쪽 참조. 195) 김용직의 다음과 같은 언급을 참고할 만하다. “우선 정지용은 시작 활동에 관한 한 그 상위 개념을 시인하려 들지 않은 시 일체주의자였다. 그런 정신의 단면은 두 가지 직접적 증거로 이끌어 낼 수 있다. 《가톨닉 청년》 문예란을 담당하면서 그가 이상·김기림·이병기 등의 작품 을 게재한 사실은 이미 밝힌 바와 같다. 그런데 이들 시인은 그 누구도 천주교 신자가 아니었다. 그들이 쓴 작품들 역시 그런 정신세계와는 무관했다. 특히 이 잡지에 실린 이상의 작품은 다분히 기독교 신에 대한 야유·조소의 말들이 섞인 것이다. 정지용이 만약 시에 앞서 종교가 있다고 생각했다면 이런 일련의 일들이 감 행되었을 리가 없다.” 김용직, 「순수와 기법―정지용론」, 『한국 현대시인 연구 (상)』, 서울대학교출 판부, 2000. (김용직, 『김용직 평론선집』, 문혜원 편, 지식을만드는지식, 2015, 119쪽에서 재인용) - 95 - ▲ 『가톨릭청년』 10호(1934.3.)에 수록된 「불사조」와 「나무」196). ① 시의 길이와 형식이 서로 유사하다. 「불사조」는 총 6연 12행, 「나 무」는 총 6연 11행으로 쓰였으며 각 행의 문장 길이 역시 비슷하다. 행의 수가 홀수인 「나무」의 마지막 연을 제외하고 두 시 모두 각 연마다 2행 씩 구성되어 있다. 『가톨릭청년』 10호 원본의 지면을 보면 지면 한 장을 딱 맞게 채우는 길이의 두 시는 안정적으로 나란히 배치되어 있다. 정지용 은 당시 『가톨릭청년』 편집에 깊이 관여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서로 거울 상으로 마주보는 것과 같은 이러한 시각적 구성197)에는 정지용의 의도가 강 하게 작동했을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 심지어 감탄사 “오오”가 두 번씩 반 복되는 것마저 동일하다. 196) 이미지는 다음 책을 참고하여 스캔하였다. 정지용, 『정지용 전집 3: 원문시집』, 최동호 편, 서정시학, 2015, 199~200쪽. 197) 전호(前號)였던 『가톨릭청년』 9호(1934.2.)에 게재된 정지용의 시 「다른한 울」과 「하나다른태양」의 경우도 거울상으로 배치되었었다. 두 시 모두 이름 모를 성화(聖畫)를 한 점씩 수반하고 있는데, 이 두 점의 성화는 사실 같은 그 림을 좌우반전시킨 것이다. - 96 - ② 두 시 모두 “피카소作”이라 명시된, 입체파 화가로 유명한 파블로 피 카소(Pablo Picasso, 1881~1973)의 그림과 함께 수록되었다. 시의 내용에 어울리는 삽화나 가톨릭 교리와 관련 있는 성화(聖畫)가 아니라는 점에서, 이러한 배치는 어떤 의도의 개입이 아니라면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 더군다 나 피카소의 그림 중에서도 현대의 대중에게조차 잘 알려지지 않은 그림들 이라 주목되는 바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연구사는 별다른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던 사항이다. 「나무」에 덧붙여진 그림은 「기타, 유리잔 그리고 과일 이 담긴 과일접시」(원제: Guitare, verre et compotier avec fruits, 192 4)198)로 확인된다. 「불사조」에 게재된 그림은 정확한 정보를 확인하긴 어 려우나, 화풍으로 보아 「나무」의 그림과 마찬가지로 피카소가 1920년대에 ▲ 『가톨릭청년』 9호(1934.2.)에 수록된 「다른한울」과 「하나다른태양」. 원광(圓光)을 둘러쓴 성화 속 천사는 고개를 숙인 채 성화(聖火)를 향해 손을 내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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