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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용 문학, 내면공간에 대한 천착과 다양하게 변주되는 불 이미지 본문

국어국문학, 풍월을 읊다

정지용 문학, 내면공간에 대한 천착과 다양하게 변주되는 불 이미지

②℃ 2020. 9. 3. 02:00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면공간에 대한 천착은 지속적인 주제였으며, 다양하게 변주되는 불 이미지가 정지용 문학의 이러한 연속성을 뒷받침한다는 것이 본고의 주장이다. 그러나 연속성을 중시한다고 해서 각기 다른 경향들 사이의 전환 지점을 논외로 치부할 수는 없다. 초기에서 후기로의 이행을 ‘바다→산’206)의 이행이나 ‘감각→기억’207)의 이행으로 바라보는 관점들을 적극적으로 참고해야 한다. 2장에서 논한 정지용의 시론에 의하면, 내면공간이란 내적 에너지가 응축 205) 신범순, 「정지용 시에서 ‘詩人’의 초상과 언어의 특성」, 148쪽. 206) “이후 바다에서 산으로 소재가 이동하면서 산수시 계열의 시들이 씌어진다. 감각에서 정신에로의 변전이 그것이다.” 최동호, 『하나의 도에 이르는 시학』. 160쪽. 207) “필자는 정지용의 후기 시가 감각에서 기억의 영역으로 그 중심점을 옮겨 놓고 있다고 생각한다. 감각은 육체적인 것과 관련되는 것이며 기억은 혼의 영 역과 관련되는 것이다.” 신범순, 「정지용의 시와 기행산문에 대한 연구―혈통의 나무와 德 혹은 존 재의 平靜을 향한 여행」. 196쪽. - 105 - 된 공간이자 감각·감정·지성 등이 서로 분리되지 않는 총체적 공간이다. 박 용철의 표현을 빌리자면 “전일체”적 공간이라 할 수 있다. 전일체적 공간에 서는 삶과 죽음 역시도 엄밀히 분리되지 않는다. 이는 죽음으로 하여금 실 존의 한 부분을 이루게 하는208) 내면공간의 근원적 특징이다. 이때 중기 시편에서 ‘영혼’ 안에 거하던 성스러운 불은 다시 ‘자작나무 모 닥불’이란 소박한 이미지로 변화한다. 「백록담」을 비롯한 후기 시편에서 자주 등장하는 자작나무, 즉 ‘백화(白樺)’는 “소멸과 죽음의 상징”209)이다. 그런데 ‘불’은 지금까지 논의한 바에 의하면 한 존재의 실존을 가능케 하는 내적 동력이자 생명력이었다. 「인동차」에서 이러한 ‘자작나무’를 태워 차 를 끓일 ‘불’을 피운다는 것은 ‘죽음을 통한 삶의 유지’라는 역설적인 의미 를 담고 있다. 정지용은 박용철의 죽음이 닥쳐왔던 1938년을 전후로 하여 삶과 죽음의 교환 가능성을 더 적극적으로 사유하게 된다. 남자가 삼십(三十)이 지난 나이가 되고보면 이만한 나룻과 염을 갖훌 수 있 는것이었던가, 달포 가까히 입원한 동안에 이렇게 짙을수 있는 것이런가, 새삼 스럽게 놀랍기 도하다. (…중략…) 알른사람이야 오작하랴마는 사람의 생명이란 진정 괴로운것임을 소리없이 탄식아니할수 없다. 계절과 계절이 서로 바뀔때 무형(無形)한 수레바퀴에 쓰라 린 마찰을 받아야만 하는 사람의 육신과 건강이란 실로 슬픈것이 아닐수없다. ― 「남병사(南病舍)」210) 일부 박용철이 죽기 두 달 전에 발표된 위의 글에서, 정지용은 다 죽어가는 젊 은 남자(박용철)의 얼굴에 수염만은 덥수룩하게 자라나는 아이러니한 광경 을 보면서 느낀 복잡한 감정을 담담히 써내려간다. 벗의 죽음 앞에서 “생 명”과 “육신”, “건강” 등 삶과 결부된 것들은 모두 괴롭고 슬픈 것에 불과 208) Blanchot, Maurice, 앞의 책, 175쪽. 209) 조영복, 「정지용의 「백록담」과 ‘인간 꽃’의 황홀경」, 『원형 도상의 언어적 기원과 현대시의 심연』, 소명출판, 2012, 292쪽. 210) 『동아일보』, 1938.3.3. - 106 - 한지 혼란스러워하는 심리가 잘 드러나 있다. 그러나 1년 후 정지용은 다시 시인이란 “살음과 죽음”에 초연한 “생명의 검사로서 영원에 서”야 한다고 역설한다. 이 문장이 담긴 시론 「시와 발표」는 박용철의 계승이면서 추모 의 성격을 띤다는 점은 이미 2장에서 밝혀둔 바이다. 삶과 죽음을 둘러싼 「남병사」에서의 복잡한 심경은 벗의 죽음을 치열하게 추억하고 애도하는 과정을 거친 후 “살음과 죽음”을 모두 아우르는 완숙한 사유로써 극복된다. 이렇게 정지용의 후기 시편은 박용철의 투병 및 사망이라는 사건과 함께 시작되고 있다. 정지용은 아픈 벗을 줄곧 바라보며 자신의 초기 시편의 한 축을 담당했었던 ‘열병 걸린 아이’의 이미지를 떠올렸을 것이다. 그래서 “알 른사람은 어린아이같은 심정을 가질수도 있는것”211)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박용철과의 금강산 여행을 기록한 「내금강소묘(內金剛素描)」 연작212)에서 박용철을 돌보는 정지용의 모습은 차라리 아픈 아이를 둔 아버지에 가까워 보인다. 그런 탓에 후기 시편의 처음 양상은 초기 시편의 모티프를 다시금 변주하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일상적 불의 이미지가 귀환한 것이다. 일반적으로 후기 시편은 『문장』 수록작들을 중심으로 논의되지만, 박용 철의 병세가 악화된 시기이자 후기 시편의 시작을 알리는 1938년도의 작품 들213)을 먼저 살펴보고자 한다. 과도기적 작품인 「슬픈우상」의 뒤를 이어 『삼천리문학』 2호(1938.4.)에는 「삽사리」와 「온정(溫井)」이 함께 수록 된다. 흥미롭게도 이들 역시 「다른한울」과 「하나다른태양」, 「불사 조」와 「나무」 등 『가톨릭청년』 수록작들과 마찬가지로 어느 정도 데칼 코마니적인 형식을 보인다. 중기 시편에서 강렬하게 타오르던 ‘성화(聖火)’ 에 가려진 ‘촛불, 화롯불’ 등의 일상적 불 이미지가 여기서 재등장한다. 그날밤 그대의 밤을 지키든 삽사리 괴임즉도 하이 짙은울 가시사립 굳이 닫 211) 「남병사」 212) 본래 조선일보에 「수수어 3」(1937.2.14.)과 「수수어 4」(1937.2.16.)으로 실 린 작품들을 『문학독본』에는 각각 「내금강소묘(1)」과 「내금강소묘(2)」로 개제 하여 수록했다. 213) 정지용은 박용철의 죽음 직후인 1938년 하반기에는 어떤 작품도 발표하지 않았다. - 107 - 치었거니 덧문이오 미닫이오 안희 또 촉불 고요히 돌아 환히 새우었거니 눈이 치로 쌓인 고삿길 인기척도 않이 하였거니 무엇에 후젓허든 맘 못뇌히길래 그 리 짖었드라니 어름알로 잔돌사이 뚤로라 죄죄대든 개울물소리 긔여 들세라 큰봉을 돌아 둥그레 둥긋이 넘쳐오든 이윽달도 선뜻 나려 슬세라 이저리 서대 든것이러냐 삽사리 그리 굴음즉도 하이 내사 그대ㄹ 새레 그대것엔들 다흘법 도 하리 삽사리 짖다 이내 허울한 나릇 도사리고 그대 벗으신 곻은 신이마 위 하며 자드니라. (강조: 인용자) ― 「삽사리」214) 전문 그대 함끠 한나잘 벗어나온 그머흔 골작이 이제 바람이 차지하는다 앞남긔 곱은 가지에 걸리어 파람 부는가 하니 창을 바로치놋다 밤 이윽쟈 화로ㅅ불 아쉽어 지고 촉불도 치위타는양 눈썹 아사리느니 나의 눈동자 한밤에 푸르러 누은 나를 지키는다 푼푼한 그대 모습 훈훈한 그대 말씨 나를 이내 잠들이고 옴기셨는다 조찰한 벼개로 그래 예시니 내사 나의 슬기와 외롬을 새로 고를 박긔 땅을 쪼기고 솟아 고히는 태고로 한양 더운물 어둠속에 홀로 지적거리고 성긴 눈이 별도 없는 거리에 날리어라. (강조: 인용자) ― 「온정(溫井)」215) 전문 두 시는 ‘~하이’ 등의 고어체를 활용하여, 추후 「장수산」 연작에서의 예스러운 분위기로 이어지는 형식상의 단초를 우선 보여주고 있다. 또한 공 통적으로 하얀 눈이 내리는 겨울밤을 시적 배경으로 삼는데, 이 역시 「장 수산」을 비롯한 후기 시편에 지속적으로 나타나는 배경과 동일하다. 마광 수도 『백록담』에 수록된 작품들 중에서 「삽사리」와 「온정」을 최고로 꼽으면서, 두 시가 형식·내용 양면에서 “서로 자매편 또는 속편의 관계”216) 를 맺는다고 분석한 바 있다. 이들 사이에 나타나는 차이점이라면, ‘그대’라는 동일한 시어가 「삽사 리」에서는 지켜져야 할 대상으로, 「온정」에서는 (‘나’를) 지켜주고 “훈훈 214) 『삼천리문학』 2호, 1938.4 215) 『삼천리문학』 2호, 1938.4 216) 마광수, 「정지용의 시 「온정」과 「삽사리」에 대하여」, 『인문과학』 51권, 연세 대학교 인문학연구원, 1984, 27쪽. - 108 - 한” 말씨로 재워주는 주체로 다르게 등장한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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