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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용의 시각적 효과와 정물화 그리고 초현실주의 본문

국어국문학, 풍월을 읊다

정지용의 시각적 효과와 정물화 그리고 초현실주의

②℃ 2020. 9. 3. 00:00

두 그림은 서로 거울상을 이루면서 마치 마주보는 천사 가운데로 성화(聖火)의 불길이 모아지는 것만 같은 시각적 효과를 불러일으킨다. 성화(聖 火) 위에는 ‘거룩하다’는 뜻의 라틴어 ‘SANCTUS’가 적혀있다. 이 시들은 또한 제목으로도 각각 ‘다른 하늘’과 ‘다른 태양’을 가리키며, 대응 관계에 있는 작 품임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이는 의도가 담긴 일종의 ‘기획적’ 편집이 라고 볼 수밖에 없으며, 정지용은 『가톨릭청년』 편집의 전권자로서 이 기획을 전두지휘했을 것이다. 이미지 출처는 『정지용 전집 3: 원문시집』, 195~196쪽. 198) 원작 그림은 다음과 같다. - 97 - 그린 정물화로 추측된다. 199) 이 시기의 정물화들은 피카소가 점차 입체파 (큐비즘) 화풍에서 벗어나 초현실주의에 발을 들이게 된 과도기에 위치한다. ③ 유사한 시적 내용이 서로 대응 관계를 이룬다. 「불사조」와 「나무」 에 드러난 시적 대상 ‘불사조’와 ‘나무’는 모두 화자인 ‘나’와 결합되어 있 다. ‘불사조’는 “나의 가장 안”에 깃든 존재고, ‘나무’는 “나의 몸”과 동일시 된다. 엄밀히 말하자면 두 대상은 모두 특정 원관념에 대한 보조관념이다. ‘불사조’는 내 안에 있는 “비애”의 보조관념이며 ‘나무’는 “나의 몸”의 보조 관념이다. 물론 이 시들의 제목은 각각 「비애」와 「나의 몸」이 아니라, 「불사조」와 「나무」가 되었다. 정지용의 수사학을 따라가다 보면 원관념 과 보조관념이라는 절대적인 구분은 무의미해지는 경우가 많다. 또한, 「불 199) 그나마 밑의 그림이 가장 유사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이 그림의 제목은 「갈레뜨가 있는 정물화」(원제: Nature morte à la galette)로, 역시 1924년작 이다. 그런데 색 구성이 조금 다르긴 하지만 이 그림 또한 「기타, 유리잔 그리 고 과일이 담긴 과일접시」와 동일한 대상, 즉 기타와 유리잔, 과일접시를 그린 정물화임을 알 수 있다. 피카소는 동일한 대상과 동일한 구도를 가졌지만 전혀 다른 색감과 구성을 띠는 정물화를 다수 그렸다. 「불사조」의 그림은 여기에서 더 추상화되고 색 대비가 극단화된 버전으로 보인다. - 98 - 사조」와 「나무」는 모두 존재론적인 사유를 담고 있다. 「불사조」는 ‘안’ 으로 침잠해들어가는 ‘깊이’의 주제를, 「나무」는 ‘위’에의 지향과 ‘아래’로 의 묶임이 장력(張力)을 발생시키는 ‘높이’의 주제를 드러낸다. 먼저 「불사조」는 몇 번이고 부활하는 전설의 새 불사조(不死鳥), 즉 피 닉스(phoenix) 신화를 차용하여 ‘비애(悲哀)’의 본질을 탐구하는 시이다. 이 시는 가톨릭을 암시하는 요소가 전혀 없음에도 불구하고, 선행연구들에 의 해 아무런 의심 없이 종교 시편으로 묶이곤 했다. 『가톨릭청년』에 발표되 었다는 점과 불사조의 ‘부활’ 모티프가 기독교에서의 ‘부활’로 읽힐 수 있다 는 점이 그러한 분류를 용인해온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정지용은 『가톨릭 청년』에 「불사조」 이외의 종교적 요소가 전무한 다른 작품도 종종 발표 했으며 불사조의 ‘부활’이 가톨릭 교리에 입각하여 사유되고 있는 것은 아 니기 때문에, 「불사조」를 종교 시편으로 취급해온 관례는 말 그대로 ‘관 례’에 불과했다. 중남미 문학의 거장인 보르헤스(Jorge Luis Borges, 1899~1986)는 『상 상동물 이야기』(원제: El libro de los seres imaginarios, 1967)에서 죽지 않고 삶을 영원히 순환시키는 피닉스의 기원이 이집트에 있다고 주장한다. 훗날 피닉스를 신화화하는 데 많이 기여한 이들은 그리스와 로마 사람들이 지만, 삶과 죽음의 영원한 순환 가능성에 대한 사유가 있었던 이집트인들이 야말로 피닉스 신화를 처음 만든 이들이라는 것이다. 이후 스토아 철학자들 은 우주의 생성과 소멸 원리를 피닉스가 “불길 속에서 사라졌다가 다시 불 길 속에서 탄생”하는 것으로 설명했다고 한다. 즉 피닉스는 불타오르는 ‘불 새’ 혹은 ‘태양새’의 이미지로 전유되었으며, 피닉스의 생리(生理)는 곧 우주 의 섭리를 반영한다. “성 암브로시우스와 예루살렘의 시리아쿠스는 피닉스 를 육신의 부활의 증거로 여겼”다는 보르헤스의 언급은, 비록 그 기원은 기 독교와 동떨어지지만 기독교적 부활을 증거하는 이미지로 피닉스가 채택되 곤 했다는 사실을 가리킨다.200) 그러나 「불사조」에서 ‘불사조’로 명명되고 있는 시적 대상은 다름아닌 200) Borges, J.L., 「불사조 피닉스」, 『상상동물 이야기』, 남진희 역, 민음사, 2016, 51~54쪽. - 99 - “비애(悲哀)”라는 점에서, 이 시에서의 부활 모티프를 기독교적 부활과 직결 시키는 것은 무리가 따른다. 대신 어떤 연유에서 정지용이 ‘비애’를 ‘불사조’ 라는 신성한 새의 이미지로 전환하고 있는지를 고찰해보아야 한다. 의외로 이 시는 3년 전 발표된 시 「무제」, 그리고 4년 뒤 발표되는 박용철의 「시적 변용에 대해서」의 주제들과 연관이 있다. 「시적 변용에 대해서」 에서 말하고자 하는 “변용”의 요체가 바로 시인의 깊숙한 내면에서 일렁이 는 “무명화”의 변용이었음을 이미 2.2.에서 논의한 바이다. 시를 쓰게 하는 내적 필연성으로서의 “무명화”는 ‘이름을 알 수 없는 불꽃’이기도 하고, ‘함 부로 이름할 수 없는 불꽃’이기도 하다. ‘무명(無名)’이란 존재 양태는 ‘미지 (未知)’가 아니라 ‘불가지(不可知)’, 즉 아직 알려지지 않음이 아니라 알려질 수 없음이다. 일견 신비주의적인 개념이지만, 그것은 이름을 붙이려고 하는 모든 형태의 이론적·이성적·비평적 시도를 와해시킬 만큼 근본적인 요소라는 의미이다. 「불사조」의 “비애” 역시 ‘불가지’의 상태에 있다. 내 무엇이라 이름하리 그를? 나의 령혼안의 고흔불, ― 「무제」 일부 비애(悲哀)! 너는 모양할수도 업도다. (…중략…) 그러나 너를 무든 아모 석문(石門)도 보지 못하엿노라. ― 「불사조」 일부 재차 인용한 위의 구절들에 주목하면, 「무제」와 「불사조」에 나타난 ‘불’(불사조 역시 ‘불새’이므로.)은 박용철의 ‘무명화’ 개념과 상통함을 알 수 있다. 「무제」의 “고흔불”이 지닌 ‘이름할 수 없음’은 ‘무명화’와 거의 같은 맥락에 있고, “비애”의 ‘모양할 수 없음’, 즉 부정형(不定形)의 성질 역시 형 태를 알 수 없으니 함부로 이름할 수도 없는 ‘불가지’에 해당한다. “너를 무 든 아모 석문도 보지 못하엿”다는 것은 불사조(비애)의 죽음에 대한 어떠한 가시적인 실증도 부재한다는 것이다. 불사조는 스스로 불타면서 죽었다가 - 100 - 다시 살아나기 때문이다. 그러한 불사조의 생리에서 비롯된 비가시성을 시 적 주체는 찬양하듯 받아들이고 있다. 존재의 질주를 추동하는 원동력으로서의 ‘불’은 정지용 초기 시편에서부터 이미 출현하고 있었다. 그때에도 불은 내재(內在)하고 있었지만, 아직 ‘무명 화’로서의 기능을 충실히 수행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런 점에서 정지용의 종교 시편은 이 내재하는 불 모티프가 신성성과 신비로움을 획득하면서 ‘무 명화’적인 이미지로 올라서게 했다는 의의를 지닌다. 아마도 박용철은 1930 년 이후 정지용과 교류하기 시작하면서, 존재의 가장 내적으로 존재하는 ‘불가지’의 불 모티프를 심상치 않게 감지해냈던 것 같다. 이러한 사상적 교 류의 결과는 그가 1938년에 이르러 직접 “무명화” 개념을 내놓기에 이른다. “무명화”는 정지용의 불 모티프를 시 창작론과 시인의 존재론에 비평적으로 연결시킨 개념이다. 그러나 본고의 2.3.과 3.1.에서 논의한 것처럼 정지용의 보편존재론과 시론에서 ‘비애/슬픔/고독’이 개별적인 감정이 아니라 존재의 가장 내적인 근거이자 시작(詩作)의 질료로서 의미화되는 양상을 환기한다 면, ‘비애’를 ‘무명화’적인 의미로 사유하는 「불사조」는 「시적 변용에 대 해서」의 주제를 훨씬 명료하게 선취한 셈이 된다. ‘무명화’에 대한 정지용 시의 공명은 바슐라르가 전개한 ‘불의 시학’와 유사한 면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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