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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현의 유폐성과 정지용 시에 나타난 공간의식 본문

국어국문학, 풍월을 읊다

표현의 유폐성과 정지용 시에 나타난 공간의식

②℃ 2020. 9. 1. 22:25

표현은 내면으로 침잠하는 시적 주체의 특질을 ‘유폐성(幽閉性)’으로 설명하 고자 하는 의도를 함축한다. 김종태15)는 정지용 시에 나타난 공간의식에 초 점을 맞추어, 정지용의 시적 주체가 놓이는 공간을 ‘원형적 공간/근대적 공 간/제의적 공간’으로 삼분한다. 초기부터 후기까지 이르는 정지용의 시세계 를 ‘공간’으로 도식화한 점은 흥미로우나, 연구자가 마지막에 개념화하고 있 는 후기 시편의 ‘제의적 공간’은 여전히 “세속적인 외부 세계와 차단된 정 적인 내면 공간”으로 정의된다. 다만 이를 ‘유폐’가 아니라 ‘초월’이라는 긍 정적인 차원으로 논의하여, 정지용 시의 내면공간이 지닌 긍정성이 규명될 여지를 어느 정도 암시하고 있다. 나민애16)는 정지용과 김기림의 시를 ‘이 미지즘’으로 일컫는 맥락을 재해석하면서 이미지즘의 진의가 “새로운 시적 세계를 획득하고 그 안에 의미를 부여하는 ‘내적 공간’의 문제로 확대될 수 있”음을 지적한다. 정지용과 김기림의 이미지즘이 ‘회화성’에만 국한되는 것 이 아니라, “현실의 공간에 상상적인 공간을 은유”함으로써 새로운 조선적 인 토폴로지(topology)를 구축하는 데에 표적을 두었다는 것이다. 이 연구 는 1930년대의 모더니즘·이미지즘의 일명 ‘토착화’ 양상을 기존과 다른 방 식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독특한 성취를 보여준다. 그러나 톨 로지로서의 ‘내적 공간’이 지나치게 ‘유토피아’로서만 의미화되는 대목은, 연 구자가 지칭하고 있는 ‘내적(內的)’이란 수사에 엄밀함이 누락되어 있는 것 은 아닌가하는 우려를 낳는다. 1920~1930년대 시들의 ‘죽음’ 모티프에 대한 가치전도를 시도하고 있는 권희철17)은 이 시기 시편들에 나타나는 ‘죽음’ 모티프가 ‘시적인 것’에 대한 사유와 접속한다는 전제를 배면에 깔면서, 정지용 역시 이러한 시적 기획의 연장선에 있다고 본다. 여기서 정의되는 정지용 문학의 요점은 “무형의 ‘생 명력’에 어떤 형태를 부여하면서 그것을 현실 속에서 재발견”하는 데에 있 다. 정지용 시의 주된 이미지들 가운데 ‘바다’와 ‘유리창’은 생명력을 투사하 15) 김종태, 『정지용 시의 공간과 죽음』, 월인, 2002. 16) 나민애, 『1930년대 ‘조선적 이미지즘’의 시대―정지용과 김기림의 경우』, 푸 른사상, 2016. 17) 권희철, 「1920-30년대 시에서의 ‘죽음’의 문제」,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박 사학위 논문, 2014. - 8 - 는 스크린(screen)적 공간으로, ‘소라껍질’과 ‘백록담’은 이 생명력과 그 바깥 의 세계(아마도 ‘죽음’의 세계를 암시하는.)를 아울러 담아내는 ‘시적 그릇’ 으로서의 공간으로 변모한다. 이 연구는 정지용 문학의 본질을 ‘시적인 것’ 과 연계하여 파악한다는 점에서 본고와 문제의식을 공유하지만, 안/밖의 대 별 구도가 삶/죽음의 대별 구도와 동일시되는 데에서는 견해를 달리하는 부 분이다. 연구자가 이러한 견해의 근거로 「유리창」만을 제시하였기에 발생 한 문제인 것으로 보인다. 「불사조」를 비롯하여 종교 시편을 포함한 몇몇 시편들은 오히려 ‘죽음’을 내적인 문제로 받아들이고 있다. 김정현18)은 ‘구인회’ 동인이 공동체 차원에서 전개해나갔던 예술가적 존 재론에 정지용을 투입함으로써, 신범순이 김기림과 정지용의 시적 주제를 ‘예술가의 위대한 내면’으로 해석한 맥락을 이어나간다. 이 연구를 통해 정 지용 후기 시편 역시 초·중기 시편과 마찬가지로 ‘자연’을 “내면적 정신성” 의 공간으로 받아들이는 예술가적 존재론의 연장으로서 파악된다. 따라서 정지용을 비롯한 구인회 동인의 ‘데포르마시옹(déformation, 變容)’ 미학은 ‘환상’이란 유토피아적 이미지를 구축하는 데에 주력한다. 김예리19)도 정지 용에게 ‘꿈’과 ‘환상’의 모티프가 반복적으로 나타남을 지적하며, “낭만적 총 체성을 상실한 근대 세계 위에” “환상적인 꿈의 세계”를 건축하는 의의가 있다고 평가한다. 그러나 본고에서는 정지용의 내면 의식과 내면성을 이러 한 ‘낭만적인 환상성’으로 의미화하는 작업을 가급적 피하고자 한다. 이는 앞선 나민애의 연구와 같은 한계를 노출하지 않기 위함인데, 정지용의 내면 을 이러한 ‘유토피아적 추구’로 환원하는 관점으로는 시력(詩歷) 전체를 관 통하는 ‘내면탐구’의 긴장이 제대로 설명되지 않기 때문이다. 정지용의 내면 에는 많은 경우 오히려 ‘낭만성’이 소거되어 있다. 정지용에게는 ‘환상’과 ‘꿈’의 세계를 모종의 초월적 세계로 찬탄하려는 의지가 보이지 않으며, 20) 18) 김정현, 「의 ‘데포르마시옹’ 미학과 예술가적 존재론 연구―김기림, 이상, 정지용을 중심으로」,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박사학위 논문, 2017. 19) 김예리, 「정지용의 시적 언어의 특성과 꿈의 미메시스」, 『한국현대문학연구』 37권, 한국현대문학회, 2012. 20) 이 지점에 대해서는 종교 시편의 찬양적인 분위기가 반례로 제시될 만하겠 다. 그러나 후술할 내용을 간략히 먼저 적어보자면, 정지용의 종교 시편에서 - 9 - 그의 내면은 언제나 불안하고 폭압적인 외적 현실과 불가피한 동행을 하고 있다. 환상적이고 섬세한 내면이 이 현실에 대한 반동 작용으로서 구성된다 는 것은, 정지용 문학을 지나치게 수사학적으로 바라본 결론이다. 오히려 정지용에게 내면이란 외적 현실에 늘 근본적으로 선행(先行)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뒤따르는 현실과 마찰을 빚게 되며, 이 마찰이 발생시킨 내면적 주체의 파토스가 바로 ‘고독’이다. 정지용의 ‘내면공간’ 탐구를 ‘유토피아’ 탐색을 변별되도록 하는 것으로서 ‘불’[火]의 기호가 존재한다. 릴케에게 내면공간이 주로 ‘장미’나 ‘천사’와 같 은 기호들로 표현되는 한편, 정지용 시에서 내면공간은 불이 내재하는 공간 으로 은유되는 경우가 많다. 정지용 시의 불 이미지는 다른 시인들, 특히 퇴폐적 낭만주의의 영향 아래에 있었던 시인들이 주로 불 이미지를 운용하 는 방식과는 전혀 다르게 나타난다. 모든 존재를 다 집어삼킬 만한 과도한 역동성을 띤 ‘불길’ 등의 이미지에 비하면 되레 초라하게 느껴질 정도다. 그 렇지만 정지용의 불 이미지가 중요한 까닭은 이러한 ‘역동’에 대한 과도한 집착과는 구분되는, 불을 지켜내고자 하는 시적 주체의 경건한 태도가 그의 시 전반에 잠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정지용이 내면을 ‘구성’했다면, 그 구성 의 목적은 불을 수위(守衛)하려는 열망에 있다. 수위의 열망은 또한, 지켜낸 불이 다시 시적 주체 자신 혹은 다른 존재를 지켜주는 역설적인 시적 서사 로 발전해나간다. 즉 정지용 문학 전반에 깔린 시학과 시작(詩作) 원리를 릴케적 ‘내면공간’ 의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시편에 자주 출몰하는 여러 기호와 일명 ‘정신주 의’를 표방하는 듯한 후기의 사상 사이의 낙차를 해결해줄 것으로 기대된 다. 정지용의 ‘정신주의’는 초중기에 지나온 모종의 경험으로 인해, 갑작스 보이는 이른바 ‘찬양’의 태도는 ‘유토피아적 추구’와는 사뭇 다른 방식으로 전 개된다. 정지용은 종교 시편에 있어서도 경외의 시선을 ‘바깥’의 존재나 세계 에 돌리는 게 아니라 오히려 ‘안’으로 돌리기 때문이다. 즉 종교를 통해 ‘숭고 한 높이’를 획득하는 과정도, 정지용에게는 ‘바깥’에서 혹은 ‘바깥으로부터’ 오 는 것이 아니라 철저히 ‘내부적 사건’으로 취급된다. 요컨대 정지용이 체현한 존재론적 높이는 ‘내부적 높이’, 즉 ‘안’과 ‘위’라는 방향성이 병존하는 역설적 인 내면공간을 정교화하는 데에 일조한다. - 10 - 럽게 노선을 변경한 결과물이 아니다. ‘정신주의’라 할 때에 ‘정신’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정교한 논의가 요청되는 것이다. 본고는 정지용의 시학적 입장 이 초월론적인 동양주의 혹은 낭만주의 가운데 어느 한쪽으로 편중되는 것 이 아니라, 시의 본질이 성취되는 공간으로서 존재 내부의 ‘내면공간’을 상 정하는 것에서 시작되었음을 밝히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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