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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밀함의 의미, 외부 세계에서 경험할 수 없는 무수한 상위 차원 포함 본문

국어국문학, 풍월을 읊다

내밀함의 의미, 외부 세계에서 경험할 수 없는 무수한 상위 차원 포함

②℃ 2020. 9. 2. 01:00

‘내밀(內密)함’이란 말은 이를 함축적으로 가리키는데, 즉 ‘내밀한 무한으로 서의 내면’은 마음의 가치를 높이는 것에서 나아가 외부 세계에서는 경험될 수 없는 세계의 무수한 상위 차원들을 포함하는 또 다른 ‘세계’로 거듭나는 것이다. 30) Blanchot, Maurice, 『문학의 공간』, 이달승 역, 그린비, 2010, 196쪽. 31) Bachelard, Gaston, 『공간의 시학』, 곽광수 역, 동문선, 2003, 319쪽. - 14 - 블랑쇼도 바슐라르의 ‘내밀함’ 개념을 이어받고 있다. 다만 모든 내면이 곧 내밀한 내면공간을 구성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릇된 내면성’으로 촉 발된 ‘닫힌 내밀성’은 오히려 우리를 “모든 것으로의 진정한 다가감으로부터 배제”32)되게끔 만든다. 진정한 내면공간은 ‘열린 내밀성’이어야 한다. “바깥 의 내밀성과 내밀한 넓이 속에 있게 되는 내밀성”, 즉 ‘안-밖’을 구분하는 것이 아니라 이율배반적으로 포괄하게 되는 내면공간이 바로 릴케의 ‘세계 내면공간’의 요점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해석은 물론 ‘바깥’의 철학적 가능 성을 중시하는 블랑쇼의 관점이 개입된 결과로 보이기도 하지만,33) 실제로 릴케의 텍스트를 읽어보면 수긍할 만하다. 다음은 ‘세계내면공간’ 개념이 가 장 직접적으로 등장한 릴케 시편의 일부이다. 모든 존재를 관통하며 그 하나의 공간이 가 닿는다: 세계내면공간. 새들은 조용히 우리들 사이를 지나 날아간다. 오, 성장하고자 하는 나, 나는 밖을 내다보며, 그리고 내 안에서는 나무가 자란다.34) (강조: 인용자) ― 라이너 마리아 릴케, 「다섯 편의 노래」 일부 1914년에 쓰인 것으로 알려진 위 시의 독일어 원문에서 인용 부분만큼만 발췌하면 다음과 같다. Durch alle Wesen reicht der eine Raum: Weltinnenraum. Die Vögel fliegen still durch uns hindurch, O, der ich wachsen will, 32) 『문학의 공간』, 191쪽. 33) “블랑쇼에게 ‘바깥’은 글쓰기가 ‘결여(manque)’에 대해 이야기하도록 만드는 원동력이다. 우리의 말과 존재를 결여되게 하는 것, 그 부재에 대한 인식이야 말로 문학을 0도(point zéro)에서 다시 출발하게 만드는, 본질에 대한 인식이 라 할 것이다.” 서지형, 「모리스 블랑쇼와 탈주체의 글쓰기: ‘목소리’와 ‘불안’을 중심으로」, 서울대학교 불어불문학과 박사학위 논문, 2018, 19쪽. 34) Rilke, R.M., 『릴케 전집 3: 완성시(1906~1926)·프랑스어로 쓴 시』, 고원·김 정란 역, 책세상, 2001, - 15 - ich she hinaus, und in mir wächst der Baum.35) (강조: 인용자) “Weltinnenraum”은 부연설명(“Durch alle Wesen reicht der eine Raum:”) 바로 뒤에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다음 행의 맨 앞에 다소 부자연 스럽게 배치36)되어 있다. 그만큼 릴케가 이 개념을 강조하고자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세계내면공간’이란 결국 “모든 존재를 관통하는 그 하나의37) 공간”이다. 즉 ‘세계내면공간’은 인간 주체의 ‘마음의 공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존재의 내부를 이어주는 전일적(全一的) 공간으로 확장된다는 것이다. ‘세계내면공간’에서의 ‘세계’는 현존재의 실존을 규정하는 실존범 주38)라는 하이데거적 세계라기보다는, 블랑쇼의 어법대로 ‘열린 내밀성’이라 할 때 ‘열림’이 일어나는 장소에 가깝다. 위 시에서 ‘나’는 ‘세계내면공간’을 통해 안에서 나무가 자라는 느낌을 경험한다. 이 나무로 ‘나’와 사물이 등가 치를 이룬다는 점에서, 나무는 ‘안과 밖의 구분이 지양된 공간’ 39)이다. 후술 하겠지만, ‘나무’는 곧 ‘시인’과 같은 존재로 표현되며 이는 박용철과 정지용 시론에서도 엿보이는 수사법이다. 한편으로 ‘세계’에 해당하는 독일어 ‘Welt’는 ‘Raum’과 결부될 때에는 시(詩) 그 자체와 동일시된다. 『오르페 우스를 위한 소네트』에서 릴케는 ‘Innen’이 빠진 ‘Weltraum’이란 용어를 쓰기도 한다. 숨쉬기여, 너 보이지 않는 시여! 35) Rilke, R.M., Sämtliche Werke Ⅲ, hrsg. von Rike-Archiv in Verbindung mit Ruth Sieber-Rilke,besorgt durch Ernst Zinn, Insel Verlag, Frankfurt a.M., 1987, p.93 36) 물론 이러한 배치는 1행과 4행(“Raum”과 “Baum”), 그리고 2행과 3행 (“still”과 “will”)의 각운을 각각 맞추기 위함이기도 하다. 릴케는 이 시에서 대 부분 이런 식으로 1-4행, 2-3행의 각운 배치를 고수하고 있다. 37) ‘Insel’ 출판사에서 출간한 릴케 전집 원어본에서는 ‘eien’(‘하나의’)이 이탤릭 체로 강조되어 있다. 그러나 이것이 릴케의 본래 표기를 반영한 것인지, 혹은 출판에서 편집을 가한 것인지는 확인하기 어렵다. 38) 이기상, 『존재와 시간 용어해설』, 까치, 1998, 124쪽. 39) 최연숙, 「릴케와 세잔느」, 『독일어문학』 43권, 한국독일어문학회, 2008, 211 쪽. - 16 - 끊임없이 우리의 존재와 순수하게 교류 중인 우주 공간이여, 균형이여, 나는 그 안에서 가락으로 생겨난다.40) (강조: 인용자) - 라이너 마리아 릴케, 「오르페우스를 위한 소네트」 제2부 Ⅰ 일부 우연을 외쳐대는 소리, 이 우주 공간의 갈라진 틈새 안으로 (그 안으로는 온전한 새 울음소리가 들어간다. 사람이 꿈속으로 들 듯―) 아이들은 날카로운 외침의 쐐기를 박는다. 41) (강조: 인용자) - 라이너 마리아 릴케, 「오르페우스를 위한 소네트」 제2부 ⅩⅩⅥ 일부 원문을 확인하면, ‘우주 공간’은 ‘Weltraum’의 번역어42)다. ‘Weltraum’이 일상적으로는 ‘우주’의 의미로 쓰이는 어휘이기 때문에, 그렇게 번역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릴케에게는 꼭 ‘우주’의 의미를 지닌다기보다는 가시 적 존재의 공간, 즉 표상 차원의 ‘유한한’ 공간과 대비되는 ‘무한한’ 시적 공 간으로 여겨진다. 이 무한한 내면의 공간에서 시적 몽상이 배태된다. 43) 따라서 ‘내면의 무한함’은 시와 시인의 존재 양태를 결정 짓는 조건으로 거론되기도 한다. 릴케는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시인이 되려 면 내면으로 기꺼이 걸어 들어가 ‘고독’한 상태에 자발적으로 돌입해야 한 40) Rilke, R.M., 『릴케 전집 2: 오르페우스에게 바치는 소네트 외』, 김재혁 역, 책세상, 2001, 522쪽. 41) 위의 책, 542쪽. 42) 각 인용부분의 원문을 순서대로 적어두면 다음과 같다. 강조는 인용자. “ATMEN, du unsichtbares Gedicht!/Immerfort um das eigne/Sein rein eingetauschter Weltraum. Gegengewicht,/in dem ich mich rhythmisch ereigne.” (Rilke, R.M., Sämtliche Werke Ⅱ, hrsg. von Rike-Archiv in Verbindung mit Ruth Sieber-Rilke,besorgt durch Ernst Zinn, Insel Verlag, Frankfurt a.M., 1987. p.751) “Schreien den Zufall. In Zwischenräume/dieses, des Weltraums, (in welchen der heile/Vogelschrei eingeht, wie Menschen in Träume ―)/treiben sie ihre, des Kreischens, Keile.” (같은 책, p.768) 43) Bachelard, Gaston, 『공간의 시학』, 318~319쪽. - 17 - 다고 주장했다. 이때 ‘내면적 고독’이란 단순히 ‘홀로 됨’의 의미는 아니며, 고로 ‘고립(孤立)’과 구분된다. 꼭 필요한 것은 다만 이것, 고독, 즉 위대한 내면의 고독뿐입니다. 자신의 내면으로 걸어 들어가 몇 시간이고 아무도 만나지 않는 것, 바로 이러한 상태 에 이를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우리의 어린 시절, 어른들이 중요하고 대 단해 보이는 일들에 얽매여 분주하게 돌아다닐 때 어른들의 너무나 분주한 모 습과 이해할 수 없는 그들의 행동으로 인해서 우리가 느꼈던 고독, 바로 그런 고독을 느껴야 합니다. 44) - 라이너 마리아 릴케, 「여섯 번째 편지」 일부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는 릴케와 젊은 시인 지망생 프란츠 크사 버 카푸스가 1903년부터 1908년까지 주고받은 편지를 모아서 출간한 저작 이다. 엄밀한 의미에서의 시론서라 하기는 어렵지만, 시와 시인에 대한 릴 케의 관점이 꽤 직관적인 어조로 서술되어 있어서 중요한 텍스트로 평가된 다. 릴케에게 시인이란 철저히 내면적인 인간이며 고독한 인간이다. 그러나 릴케가 말한 ‘고독’은 ‘세계(외적 현실로서의 세계)에 내던져진’ 자의 실존적 고독을 넘어서는 것으로45), 내면의 무한성에 점점 깊게 침윤되면서 얻게 되 는 상승적인 파토스에 가깝기 때문이다. 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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