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ikastos
바타유, 시가 지닌 무한한 경험의 가능성 본문
바타유에 따르면 시는 “논리적 세계의 죽음을 통해 가능한 것의 무한성이 탄생하는 일종의 무 덤”7)과도 같다. 이 문장을 이해하는 독법은 각자 다르겠지만, 적어도 시가 지닌 무한한 경험의 가능성을 부정할 이는 오늘날 많지 않을 것이다. 혹은 시를 쓴다는 것은 하이데거의 말처럼 “존재자의 밝음과 숨김으로서의 진리 가 일어나는”8) 가장 근원적인 방식이다. 눈앞에 가시화된 현실에서는 이러 한 시의 무한성과 근원성을 탐색하는 데에 어려움이 따르며, 고로 ‘시 쓰기’ 는 필연적으로 내면의 정교화를 요청하게 된다. 정지용 문학의 본령을 ‘내 면의 탐구’로 이해할 수 있다면, 이것을 ‘시의 근원을 향한 탐구’로 바꾸어 말해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요컨대 내면으로 침잠해 들어가는 내향성(內向性)9)은 시인의 근본 성질이 자 시인이 가져야 할 숙명으로서 규정된다.10) 그래서 내면탐구는 그 자체로 의 시의 타자성 연구」, 『한국문예비평연구』 24권, 한국현대문예비평학회, 2007, 99~101쪽. 7) Bataille, Georges, 『불가능』, 성귀수 역, 워크룸프레스, 2014, 194쪽. 8) Heidegger, Martin, 『존재와 시간』, 이기상 역, 까치, 1998, 91쪽. 9) 본래 ‘내향성’은 인간의 내성적이고 비사교적인 성질을 일컫는 심리학적 용어 다. 본고의 논의와 비슷한 맥락으로는 김영랑과 이상, 윤동주를 다룬 어느 연 구에서 ‘내면지향성’으로 의미화한 바 있다.(문정현, 「1930-40년대 시의 내면 지향성 연구: 김영랑, 이상, 윤동주의 시어를 중심으로」, 경희대학교 국어교육 전공 석사학위 논문, 2009, 1~2쪽 참조. 그러나 이 연구는 ‘내면’ 개념의 다양 한 함의 가능성을 충분히 고찰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남는다.) 그렇지 만 여기서는 단어에 침윤된 심리학적인 의미를 존재론적 의미로 전도하고자, ‘안을 향한다’는 뜻이 더 선명하게 드러난 ‘내향성’이란 용어를 의도적으로 쓰 도록 한다. 10) ‘내향성’에 관한 이러한 입장은 후술할 릴케의 시론에서 지대한 부분을 차지 한다. 이는 내향성 혹은 ‘내면화’를 일본 근대문학에서 현실 도피 경향과 동일 시한 가라타니 고진의 비판과는 대치되는 것이다. 가라타니 고진은 ‘극단적인 내면화’를 “외부 세계의 소원화(疎遠化)”로 일컬었는데, 이것이 소위 “낭만파” 들 사이에서 전면적으로 발생했다고 지적했다. 물론 퇴폐적이고 감상적인 낭만 주의가 지닌 한계는 한국 문학사에서도 쉽게 포착된다. 그러나 릴케에 따르면 ‘내면화’는 오히려 주체가 외부 세계를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시적인 것으로 용 - 5 - ‘시론’이면서 ‘시인론’이기도 하다. 본고는 그동안 전혀 분석되지 않았던 정 지용과 릴케 사이의 상관관계를 정지용의 시론을 통해 살펴봄으로써, ‘내면 공간’에 상응할 만한 사유의 결들을 짚어보고자 한다. 시인을 ‘내면적 인간’ 으로 설정하고 그의 존재 양태를 ‘고독’으로 의미화하는 것은 릴케에게 중 요한 주제였다. 시인에게 ‘고독’이 불가피한 까닭은 그만큼 외적 현실에서 시인으로서의 존립 근거가 안정적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런 가운데 시인 으로서 끊임없이 내면으로 걸어 들어가 ‘자기 정립’을 꾀함은 암울한 시대 에 대한 일종의 희생적 반동이다. 정지용 시의 ‘슬픔’ 역시 바로 이러한 맥 락에서 발원된다. 본고를 통해 이념과 사조가 논쟁적으로 뒤섞이던 1930년 대에서 이토록 내밀한 시인의 존재론을 밀고 나간 정지용의 시사(詩史)적 의의가 입증되리라 기대한다. 정지용에게서 보이는 감각주의적인 측면을 ‘내면적인 깊이’와 ‘숭고한 시 인의 존재론’으로 엮어내는 관점으로는 신범순11)의 연구가 주목된다. 신범 순에 따르면 초기 시편에 두드러진 ‘떠도는 주체’의 예민한 감각은 분명 데 카당(décadent)하지만, 이는 ‘깊이’를 가진 감각성으로서 “위대한 내면성”을 지닌 시인 존재론으로 나아가는 밑바탕이 된다. ‘깊이’의 발견은 정지용 시 의 감각을 표피적인 것으로 전제하고 이 표피성을 긍정하는 지배적인 연구 경향12)과 변별되는 지점이다. 따라서 예민한 감각성은 ‘근대’라는 타자와의 해(溶解)하는 적극적인 활동이다. ‘내면’에 대한 서로 다른 가치평가가 이러한 낙차를 낳은 것으로 보인다. 柄谷行人, 『일본근대문학의 기원』, 박유하 역, 민음사, 1997, 41쪽 참조. 11) 신범순, 「정지용 시에서 병적인 헤매임과 그 극복의 문제」, 『한국 현대시의 퇴폐와 작은주체』, 신구문화사, 1998. 신범순, 「정지용 시에서 ‘詩人’의 초상과 언어의 특성」, 『한국현대문학연구』 6권, 한국현대문학회, 1998. 신범순, 「정지용의 시와 기행산문에 대한 연구―혈통의 나무와 德 혹은 존재 의 平靜을 향한 여행」, 『한국현대문학연구』 9권, 한국현대문학회, 2001. 신범순, 「1930년대 시에서 니체주의적 사상 탐색의 한 장면(1)―구인회의 “별 무리의 사상”을 중심으로」, 『인문논총』 72권 1호, 서울대학교 인문학연구원, 2015. 12) ‘감각’을 정지용의 주된 미적 원리로 설정하는 김신정(1998)과 이단비(2016) 는 이러한 지점에서 의의와 한계를 동시에 노정한다. 각각 촉각과 청각의 모티 프를 중시하는 두 연구는 정지용의 감각이 ‘자아와 타자의 관계맺기’의 핵심을 - 6 - 대면 구도를 탈피하여 오히려 탈근대적인 반동성을 띠게 된다. 감각이 내밀 하게 모여들어 구성한 정지용의 ‘슬픔/비애’는 과도기적인 두 시 「유선애 상(流線哀傷)」과 「슬픈우상(偶像)」을 통해, 근대적인 교양을 넘어서는 ‘숭고한 비극’으로 상승한다. 정지용의 시적 주체가 자신의 내면을 정교화하 는 과정을 박용철과 릴케의 시론 사이의 상관관계로 파악하는 선행연구로는 신범순이 유일하다. 후기 시와 기행산문은 보다 릴케적인 내면을 조형(造 形)해가는 도정(道程)이었으며, 정지용의 시적 관심이 ‘감각’에서 ‘기억’으로 이행하는 양상으로 파악된다. 다만 릴케의 ‘필연성’과 ‘체험’ 개념에 조응하 는 정지용·박용철 시론의 구체적인 의미와 정지용의 이른바 종교 시편은 논 의 대상에서 제외되어, 몇 가지 공백을 남겨두고 있다. 정지용이 외적인 경험 현실과는 구분되는 대안적인 내면 공간을 축조해 나간 정황은 이외에도 각자 다양한 관점과 방식으로 포착되어 왔다. 문제는 이 내면이 ‘정신의 공간’, ‘상상의 공간’, ‘마음의 공간’ 등 시인의 주관(主 觀)을 지칭하는 용어들로 가볍게 처리되면서, 단지 ‘주관성’만으로 붙잡기 어려운 정지용 특유의 내면성을 구명해야 하는 과제는 회피되어 왔다는 점 이다. 우선 최동호13)가 후기 시편을 동양적 ‘은일(隱逸)’의 정신이 담긴 산 수시(山水詩)로 규정한 이래로, 후기 시편의 시적 공간을 무위(無爲)와 관조 의 공간으로 파악하는 하나의 전통14)이 배태되었다. 이 ‘은일’이란 말에는 “은둔적이고 도피적”이란 부정적인 함의가 있다. “폐쇄된 상상적 공간”이란 이룬다고 판단한다. 이는 정지용 시의 감각 주체를 능동적 차원으로 재인식하 고 시 전체에 연속성을 마련한다는 의의가 있다. 그러나 여기서도 감각은 여전 히 외부 세계를 받아들이는 외피적 도구로서의 속성이 강조되기에, 정지용의 안-밖을 자아-타자로 치환하는 한정적인 논의에 머문다. 김신정, 「정지용 시 연구: ‘감각’의 의미를 중심으로」, 연세대학교 국어국문학 과 박사학위 논문, 1998. 이단비, 「정지용 시에서 ‘듣는 주체’의 출현과 ‘들음listening’의 감각」, 연세 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석사학위 논문, 2016. 13) 최동호, 「산수시의 세계와 은일(隱逸)의 정신」, 앞의 책, 1997, 127~165쪽. 14) “그러므로 정지용의 주관적 시간의식인 무시간성의 세계는 ‘다른 세상’, 또는 ‘저세상’에 속하긴 하지만 그러한 시간을 지향하고 받아들이며 그 세계에서 삶 을 지속하고자 하는 의지는 이미 무시간성의 세계를 ‘객관적’인 세계로 이해하 는 것이다.” 윤의섭, 『시간의 수사학―정지용 시 연구』, 한국학술정보, 2006, 118쪽. - 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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