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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용과 박용철 그리고 릴케, 내면공간의 시학 본문

국어국문학, 풍월을 읊다

정지용과 박용철 그리고 릴케, 내면공간의 시학

②℃ 2020. 9. 1. 20:25

1. 서론 1.1. 문제제기 및 선행연구 검토 본고는 정지용(鄭芝溶, 1902~1950)이 박용철 그리고 릴케와의 영향 관계 안에서 정립했던 시학을 ‘내면공간(內面空間, Innenraum)’의 시학으로 명명 하고, 이러한 주제가 시론적 산문과 시편의 ‘불’[火] 모티프에서 구체화되는 양상을 구명하는 데에 목적이 있다. ‘내면공간’이란 본래 릴케의 개념으로, 단순히 인간의 심리 및 정신의 차원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외부 현실 공 간과 맞부딪히며 실재하는 ‘시(詩)-공간’을 의미한다. 릴케에게 ‘내면공간’은 그 안에서 가시적인 것이 비가시적인 것으로, 혹은 비시적(非詩的)인 것이 시적인 것으로 ‘변용(變容)’하는 거름망과도 같다. 고로 ‘내면공간’의 시학은 시와 시인의 존재를 치열하게 입증하려고 하며, 시 창작의 메커니즘을 탐구 하고자 하는 시학이다. 정지용의 문학 세계를 이러한 ‘내면공간’의 관점에서 이해한다면 시편 전체가 일종의 ‘메타시(metapoetry)’로 읽힐 수 있는 까닭 도 여기에 있다. 즉 정지용은 ‘무엇이 시인으로 하여금 시를 쓰게 하는가’라 는 근본 문제를 시론과 시편을 통하여 지속적으로 탐색해온 것이다. 선행연 구에서 잘 언급되지 않았던 정지용 시의 ‘공간’과 ‘불’의 기호는 이러한 정 지용의 시학 원리를 염두에 둘 때 비로소 주목된다. 그동안 정지용 연구에서는 그가 취했던 시적 방법론과 그 효과를 가늠해 보려는 관점이 지배적이었던 것이 사실이다. 정지용만큼 당대에 선명하고 청신한 감각을 도입하면서도 시인으로서의 노련미까지 갖춘 시인은 한국 현 대시사에서 찾아보기 어려운데, 이는 그가 ‘한국 현대시의 아버지’란 보편적 인 칭호를 얻는 동시에 특정한 유파(流派)로 쉽게 포섭되지 않는 결과를 낳 았다. 한국 현대시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였지만 시적 스타일에 있어서는 상 당히 논쟁적이었던 것이다. 정지용을 영미 모더니즘과 이미지즘, 주지주의 (主知主義), 가톨릭 사상 혹은 동양정신과 은일(隱逸) 사상 등으로 설명하 려 했던 다양한 관점들은 이러한 딜레마를 배면에 깔고 있었다. - 2 - 정지용 문학의 가장 큰 성과를 ‘감정의 절제’로 꼽는다. 1) 그중에서도 지금 까지는 ‘감정’보다는 ‘절제’에 방점이 놓이며 정지용에게서 특징지어지는 ‘절 제’의 맥락을 설명하기 위해 수많은 방법론이 제출되어 왔다. 정지용이 “자기 감정의 분출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1920년대의 서정시”2) 로부터 변별된다는 점은 물론 부정하기 어렵다. 감정의 절제는 분명 정지용 에게서 가장 쉽게 드러나는 시적 특질 중 하나이다. 그러나 정지용에게 나 타난 ‘절제’의 양상을 인정한다 해도 과연 그 절제의 대상이 ‘감정’이었는지 의심해볼 필요가 있다. 실제로 정지용 시에서 ‘감정’이라 할 만한 시어 혹은 정조는 ‘슬픔’과 ‘비애’3), ‘고독’ 등에 한정된다. 낭만주의 시가 분노, 희열, 1) “30년대 정지용의 「유리창·1」은 흔히 이런 적절한 거리조정에 성공한 표본으 로 지적된다. 사실 정지용시들은 경험적 자아를 억제한 고전주의적 절제의 미 학에 입각한 주지적 태도를 전형적으로 보이고 있다.” 김준오, 『시론』, 삼지원, 1982, 338쪽. “주관의 객관화, 주관의 의식적 통어와 세계와의 조화가 그의 시의 정서를 다스리는 어법들이다. 갈등과 자위 사이를 오가는 것, 지용 시는 이와 같이 이 중적 정서의 길항이라는 정서적 충동을 절제와 자위의 어법으로 구사해 낸다.” 김용희, 「정지용 시 어법 연구」, 『정지용의 문학 세계 연구』, 김신정 편, 깊 은샘, 2001, 33쪽. “모더니즘의 시정신은 근대적 삶의 공간에 내몰려진 정지용 자신의 외로움이 나 고독감의 정서를 시화할 때, 자신의 시를 이전 시대의 감상적 낭만주의라는 한계에 매몰되지 않게 하려는 치열한 노력의 소산이었던 것이다.” 배호남, 「정지용 시의 갈등 양상 연구」, 경희대학교 박사학위 논문, 2008, 166쪽. 2) 권영민, 「시적 언어의 해석 문제 3―정지용의 경우」, 『문학사와 문학비 평』, 문학동네, 2009, 59쪽. 이와 관련하여 최동호도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20년대의 많은 시인들이 감정의 카오스적 분출에 의거하여 시를 썼다면, 다 양한 경험의 뉘앙스를 감각적 언어로 포착하여 선명한 심상으로 제시하였던 것이 30년대 정지용이 이룩한 획기적인 방향 전환이었다고 하겠다.” 최동호, 「정지용의 과 」, 『하나의 도에 이르는 시학』, 고려 대학교 출판부, 1997, 105~106쪽. 3) 일반적으로 ‘슬픔’과 ‘비애’는 동의어로 취급된다. 정지용에게서는 ‘비애’보다는 ‘슬픔’이란 어휘가 더 자주 등장한다. 그러나 중기 시편 「불사조」와 시론 「시 의 위의」 등에서 ‘슬픔’의 내재성(內在性)을 강조할 때에는 특별히 ‘비애(悲哀)’ 라는 말을 쓰고 있다. 정지용의 ‘비애’는 ‘슬픔’보다 좀 더 견고한 윤곽을 지닌 구체적인 사물처럼 표현된다. 따라서 본고에서는 정지용의 ‘슬픔’과 ‘비애’를 구분하여 서술하도록 한다. - 3 - 절규, 심지어 광기까지 다양한 감정을 아우르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따라서 정지용 시에서 감정의 절제 정도를 가늠하여 낭만주의-탈낭만주의의 대별 구도를 지나치게 대입하기보다는, 단순히 ‘감정’을 넘어서 정지용이 시적 대 상으로 삼아왔던 것이 무엇인지 더 많은 논의가 필요하다. 본고는 정지용 문학 연구의 쟁점을 ‘감정’에서 ‘내면’으로 옮겨놓을 것을 제안한다. 여기서 ‘내면’이란, ‘감정’과 ‘의식’, ‘심리’ 따위를 포괄할 수 있으 나 결코 그것들과 동일시되지는 않는 개념이다. 그것은 오히려 크리스토프 멘케가 “자기변화 내지 자기운동의 내적 원리”4)로 작동된다고 말했던 “미 학적 에너지”가 거하는 주체 내부의 공간을 가리킨다. ‘내면’을 일종의 ‘시 (詩)’-공간으로 구성하려는 정지용의 사유는 이러한 내면에서 시를 산출함 으로써 끊임없이 존재자들을 미학화하는 “미학적 본성”5)과 관련 있기 때문 이다. 물론 릴케식의 미학적·시적 공간으로 의미화되기 이전에도 인간 주체의 ‘내면’은 주요한 문학적 소재였다. 20세기에 이루어진 ‘근대적 개인/개성’의 발견은 진지하게 내면을 고찰하기 시작한 계기가 되었다. 한국 문학사에 한 정하여 볼 때, 1910년대 계몽주의 담론에서 내면을 가진 독립된 개체로서의 개인은 계몽과 교양의 대상이 되었고 1920년대 낭만주의 문학에서 개인의 내면은 자유로운 감정의 발로가 이루어지는 배출구로 여겨졌다. 6) 즉 ‘근대 4) Menke, Christoph, 『미학적 힘』, 김동규 역, 그린비, 2013, 78쪽. 5) 위의 책, 91쪽. 6) 이와 같은 이유로 연구자에 따라 20년대 낭만주의 문학은 재평가의 여지를 인 정받기도 한다. 근대적 개인/개성이란 동일한 주제를 겨누면서도 결과적으로 일제의 문명(Civilization) 논리에 짓눌린 계몽주의 담론과 달리, 낭만주의 문 학은 문화 제국주의에 의해 날조된 주체의 기원에 대해 오히려 반동성을 보여 주었기 때문이다. “오늘날 더욱 확산되고 있는 문화제국주의의 기원으로서 1920년대 낭만주의 문학은 분열의 글쓰기를 통해 제국주의 문명 논리가 구축해낸 주체의 기원을 부정하였다. 이 과정에서 그것은 ‘어머니’와 여성의 ‘몸’이라고 하는 여성적 타 자와 ‘병’과 ‘죽음’, ‘눈물’이라고 하는 타자성을 통해 고결함과 남성다움의 섹 슈얼리티를 강조한 가부장적 주체의 권위를 부정하고, 문명의 논리를 강조하는 제국주의 일상성과 감각의 논리를 부정함으로써 인간의 근원적인 존재성을 지 향하였다.” 조혜진, 「문화 제국주의의 기원에 대한 “분열”의 시 쓰기: 1920년대 낭만주 - 4 - 적 개인’과 내면은 불가분의 관계처럼 보였다. 그러나 릴케를 전유한 정지용의 시학에서 시적 대상이 되는 ‘내면’은 이러 한 근대의 개별화 작업과 무관한 것이다. ‘내면공간’은 무한하고 불가해한 시의 본질을 존재자 차원에서 사유하려는 시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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