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ikastos
대척점에 있는 자작나무 장작불과 화약불 그리고 아이러니 본문
이 구도에서 자작나무 장작불과 화약불은 대척점에 있다. 어 느 한쪽은 “심캐기늙은이”의 꿈을 촉발하는 반면, 다른 한쪽은 그 꿈을 깨 게끔 하기 때문이다. 정지용은 두 가지 다른 ‘불’의 대비를 노골적으로 보여 주기보다는 아이러니하게 처리함으로써 하나의 초현실적인 장면을 연출한 다. 살펴본 바와 같이, ‘산수시’로 곧잘 명명되는 관례와 달리 정지용의 후기 시편에도 ‘불’의 이미지가 선명한 수사를 동반하며 자주 등장한다는 점을 알 수 있었다. 다만 이때의 ‘불’은 초기 시편의 소박한 ‘숯불’류의 불로부터, 차가운 산속의 공기와 직접 대면하는 ‘자작나무 장작불’의 형태로 변모한다. 후기 시편의 불 이미지에서는 모든 이항대립적인 것들, 예컨대 안과 밖, 물 과 불, 그리고 삶과 죽음 등의 경계가 무화된다. 즉 불이 관장하고 있는 내 면공간의 의미가 점차 이율배반을 포용하는 광활한 공간으로서 확장되고 있 는 것이다. 후기 시편 속 내면공간은 바슐라르가 말한 ‘내밀의 무한성’이나, 블랑쇼가 추구했던 ‘열린 내밀성’ 등을 시적 이미지로 정교하게 형상화한 결과와도 같다. 후기 정지용의 사상이 ‘정신주의’라는 것은 다시 말해 ‘확장 된 내면공간’에 대한 사상이었다고 정정해볼 수 있을 것이다. - 116 - 4. 결론 본고는 정지용 문학이 지닌 근본 주제를 ‘내면공간’의 시학이란 관점에서 분석하여, 정지용의 수필 및 시편을 일관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틀을 마련 하고자 하였다. 내면공간이란 릴케의 개념으로, 정신이나 영혼의 영역을 외 부 현실 세계보다 광활한 공간으로 인식되는 데에서 나아가 세계와 사물들 의 본질이 밝혀짐으로써 시가 산출되는 무한한 ‘시(詩)’-공간으로서 의미화 된다. 내면공간의 시학은 ‘가시적인 것의 비가시화’를 중시하는 시학이다. 가시적인 사물들의 세계가 ‘변용’ 및 ‘전환’을 통해 시공간이 해체된 후, 새 로운 ‘시(詩)’-공간으로 재편되는 것이다. 그동안 정지용 문학은 주로 비가시적인 영역을 가시화하는 방법론을 취하 는 것으로 여겨져 왔다. “시는 언어와 Incarnation적 일치다”(「시와 언 어」)나 “안으로 열(熱)하고 겉으로 서늘옵기”(「시의 위의」)와 같은 시론 에서의 언급은 이러한 관례를 뒷받침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다른 시론 「시와 발표」는 박용철의 「시적 변용에 대해서」를 능동적으로 계승하고 있는데, 「시적 변용에 대해서」가 릴케의 시학을 인용하고 수용했다는 점 을 주목할 만하다. 「시와 발표」의 이러한 특징을 고려하면 정지용이 다른 시론에서도 공간화된 ‘내면’에서 가시적인 것이 비가시화되는 메커니즘을 은 연중에 강조하였음을 알 수 있다. 요컨대 정지용은 후기 시론에서 박용철 그리고 릴케와의 삼각 구도를 형성하며 ‘내면공간’의 시학을 통해 시의 본 질을 희구했다. 다만 ‘내면공간’의 시학이 후기에 이르러서야 적용되었던 것은 아니다. 정 지용은 릴케와의 접점을 기대하기 힘든 초·중기 시편에서도 모종의 ‘내적 공간’에 대한 애착을 드러냈다. 이러한 공간에는 항상 ‘불’의 이미지가 결합 되어 있는데, 즉 정지용의 불 이미지는 내재성(內在性)을 띤다는 특징이 있 다. 초·중·후기 시편에 이르기까지 정지용의 불 이미지는 공간 안에 거하는 기호로 계속 자리매김한다. 본고에서는 이러한 불 이미지를 「시적 변용에 대해서」에서 시 쓰기의 ‘필연성’을 가리켰던 ‘무명화(無名火)’ 개념에 상응 - 117 - 하는 것으로 보고자 했으며, 그렇다면 정지용 시는 일종의 메타시 (Metapoetry)로서의 의미도 지니게 된다. 초기 시편부터 시학적 주제를 기 호를 통하여 형상화해왔기에 후기에 릴케의 ‘내면공간’의 시학을 수용할 수 있었던 것이다. 2장에서는 1930년대에 박용철·임화·김기림 세 논자를 중심으로 전개되었 던 ‘기교주의 논쟁’을 살폈다. 이 논쟁의 가장 큰 쟁점이었던 ‘기교(技巧)/기 술(技術)’의 구분 문제가 박용철에게 시의 본질을 사유하게끔 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이로써 「시적 변용에 대해서」가 쓰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시적 변용에 대해서」는 기교주의 논쟁이 닿을 수 없었던 시의 창작 원리 를 ‘기술(奇術)’이란 새로운 개념어로 보완하였다. ‘변용’과 ‘체험’ 등 내면공 간의 시학과 결부된 릴케의 개념들이 활용되었으나 박용철의 요절로 시론은 더 발전하지 못했고, 이 작업은 1939년 『문장』에 발표된 일련의 시론들에 서 정지용에 의해 명맥을 이을 수 있었다. 정지용은 시론 곳곳에서 박용철 과 릴케의 시론을 적절하게 배합하여, ‘내면’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시학적 입장을 성공적으로 정립했다. 3장에서는 2장에서 정지용의 시론이 산출될 수 있었던 배경으로서 정지용 시편을 초기·중기·후기로 나누어 분석했다. 정지용의 시 세계에 드러난 ‘내 면공간’의 변모 양상과 그러한 변모를 추동해내는 불 이미지의 변천을 살피 고자 한다. 초기 시편은 주로 교토 유학 시절부터 『시문학』 창간 이전까 지 창작된 시편들을 포괄하여 이른다. 일본어 산문 「시·개·동인」을 비롯한 글들은 「카페 프란스」의 주요 공간인 ‘카페 프란스’를 이국 정조와 방랑 의 공간이 아니라, 예술가 공동체가 형성되고 문학적 야심이 싹트는 공간이 었음을 암시한다. 이때 정지용에게 안온한 공간으로서의 ‘방 안’이 자주 등 장하며, 방의 기호는 교토 체험이 깃든 ‘근대 도시 거리에 파묻힌 방’과 ‘아 픈 어린아이를 돌보는 방’으로 양분된다. 후자에서 주로 ‘숯불’이나 ‘석탄불’ 등의 소박한 불 이미지가 등장하고, 이것은 어린아이의 내열(內熱)과 엮이 면서 불이 내재성을 확보한다. 중기 시편은 흔히 가톨릭 시편으로 분류하는 것이 관례였다. 그러나 한편 으로 이 시기는 박용철과의 교류가 시작된 시기이기도 하다. 가톨릭 시편이 - 118 - 라는 선입견에 가려졌던 중기의 불 이미지는 ‘영혼’ 안에 거하는 것으로 나 타나면서 초기보다 고고한 색채를 띠게 된다. 불에 초월적이고 신성한 이미 지를 더한 것은 비단 가톨릭뿐만 아니라 박용철과의 교류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이 시기 정지용은 이미 박용철과 교류를 통해 릴케를 알게 되고 자 신의 시론을 정립할 필요성을 느꼈을 것이다. 이들의 후기 시론의 단초는 「무제」를 비롯한 중기 시편에서 발견된다. 후기는 박용철의 죽음 이후 시론이 창작되면서, 동시에 『문장』이 창간 되고 『백록담』이 발간된 시기다. 친한 벗의 죽음은 정지용에게 ‘내면공간’ 의 총체적 의미를 다시 사유하게 하는 계기가 되며, 이로 인해 불의 내재성 도 양상을 달리하게 된다. 후기 시편은 주로 물과 산 이미지 위주로 분석되 어 왔으나, 「온정」, 「삽사리」, 「인동차」 그리고 「도굴」 등 의외로 많은 작품에서 불 이미지가 변주됨을 주목해야 한다. 블랑쇼가 릴케를 분석 하면서 언급했던 ‘열린 내밀성’이란 이율배반이 후기 시편에서 실현된다. 삶 과 죽음, 물과 불 등 대립적인 것들을 통합하여 ‘내면공간’을 확장하려는 사 유가 후기 시편, 나아가 정지용 문학 전체의 정수(精髓)로 거듭난 것이다. 이렇듯 정지용의 시론은 단순히 ‘정신주의’나 ‘모더니즘’으로만 정의될 수 없으며, 그의 시편도 ‘모더니즘→가톨리시즘→산수시’의 단절적인 변화로 재 단될 수만은 없다. 정지용은 시가 산출되는 공간으로서의 ‘내면공간’을 사유 하고 있었으며, 이는 릴케 그리고 박용철의 시론을 자신만의 언어로 소화함 으로써 더욱 깊이를 획득한다. 정지용은 ‘내면’이란 말을 둘러싸는 여러 개 념, 예컨대 감각이나 감정, 인식, 기억, 삶 등을 내면공간 특유의 통합성으 로 포용하여 그것을 모두 시적인 것으로 전환하는 ‘변용’을 꾀했다. 정지용 의 이러한 ‘탐구’의 양상은 그러나 정지용의 선구안이라기보다는, 당대 시단 에 분명히 존재하고 있었던 한 흐름에 따라 시대적으로 요구된 것일 수도 있다. 앞으로의 연구가 이 지점에 주목함으로써, 본고가 미처 닿지 못했던 시대사적인 맥락을 보충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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