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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용과 윤복진의 교류 그리고 해방 직후 조선문학가동맹 아동문학부 본문

국어국문학, 풍월을 읊다

정지용과 윤복진의 교류 그리고 해방 직후 조선문학가동맹 아동문학부

②℃ 2020. 9. 2. 19:00

물론 후자는 작품을 발표하는 데에 있어서 그다지 자연스러운 정황은 아니다. 아직까지는 「딸레(人形)와아주머니」를 1924년작으로 보는 편이 더 타 당하다. 161) 정지용과 윤복진이 당시 교류했다는 직접적인 근거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그러나 해방 직후 조선문학가동맹 아동문학부에서 각각 위원장과 사무장을 지 낸 것으로 보아,(『아동문학과 비평정신』(원종찬) 307~309쪽 참고.) 적어도 두 사람은 아동문학계의 대표자로서 서로의 존재를 오랫 동안 알고 있었을 것이 다. 162) 박태준 작곡집 『중중 때때중』을 소개한 『동광(東光)』의 어느 기사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윤복진군의 동요는 널리 알리워 잇다. 『중중떼떼중』이란 이 동요집의 이름 만 보아도 알 수 잇게 그의 조선적 동요의 포촉(捕促)은 매우 날카로운 점이 잇다. 이 점에서 조선의 동요에 일격(一格)을 시작햇다고 할 것이다.” 뒤이어 글을 쓴 기자는 자신이 동요에 관해서는 문외한임을 밝히고 있는데, 그런 입장에서도 제목 ‘중중 때때중’이 ‘조선적’이란 인상을 준다는 것은 이 말 이 민요에서 투입되었을 가능성도 고려하게끔 한다. 많은 이들에게 정겨움과 친근감을 줄 수 있는 표현으로서 인식되지 않았을까. 작자미상, 「독서실」, 『동광』 21호, 1931.5.1. 참고. - 78 - 장르의식에 기반한 동요에 대한 관심을 더욱 정교화했던 것이다. 아동문학에 대한 관심이 일본 시인 기타하라 하쿠슈(北原白秋, 1885~1942)의 영향에서 비롯되었다는 분석도 있다.165) 정지용이 교토 유학 시절 기타하라 하쿠슈가 주재한 『근대풍경(近代風景)』에 다수의 글을 발 표하면서 일본 문단에 알려졌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일본 근대아동문학의 기원인 『빨간새(赤い鳥)』지를 중심으로 한 동요운동의 주도자가 하쿠슈였 고, 아동문학이 “『빨간새』에 와서야 ‘예술성’을 강조하는 근대문학의 ‘제 도’ 안에 들어설 수 있었”166)다는 의의는 정지용의 동요 창작에도 적용시킬 수 있다. 그러나 일본 근대 아동문학의 개척자로 취급받는 기타하라 하쿠슈와는 달 리, 정지용은 그 관심의 지속에 비해 ‘개척적’이라 할 만한 모습은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 1928년 이후 여러 지면에 수록되는 동요 시편들은 대부분 이전 작품을 개작한 것들이며 완전히 새로운 작품은 1932년 『문예월간』 에 발표한 「옵바가시고」 정도에 그친다. 대신 동요 시편의 ‘아이’는 ‘열병 걸린 아이’ 모티프를 공유하는 시편들로 옮겨 온다. ‘아이’가 시적 화자에서 시적 대상으로 전환된 것이다. 이러한 전환이 가진 의미에 주목해보아야 한 다. 정지용은 ‘열병 걸린 아이’를 선명한 감각적 심상을 동원해가며 굉장히 미 학적인 모티프로 이끌어가고 있다. 이 모티프는 주로 방/집이란 공간 안에 서 어른으로 추정되는 시적 화자가 아픈 아이를 걱정스럽게 바라보는 구도 를 취한다. 이때 이 공간에서 화자와 아이를 매개하는 것이 ‘숯불’류의 일상 적 불 이미지다. 「황마차」에서 시적 화자가 갈구하던 ‘따뜻한 화로’가 여 기서는 시적 대상(아이)을 보살펴 주기 위한 것으로 기능한다. 처마 끄 테 서린 연기 딸어 163) 권정우, 「정지용 동시 연구」, 『정지용의 문학 세계 연구』, 132쪽. 164) 원종찬, 「정지용과 이태준의 아동문학」, 앞의 책, 310쪽. 165) 김성용, 「정지용 동시 연구」, 부산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석사학위 논문, 2003, 51~54쪽. 166) 원종찬, 「한일 아동문학의 기원과 성격 비교」, 앞의 책, 53쪽. - 79 - 葡萄순 이 버더 나가는 밤, 소리 업시, 감으름 땅 에 심여 든 더운 김 이 등 에 서리 나니, 훈훈 이, 아아, 이 애 몸 이 또 달어 오르 노나. 갓븐 숨결 을 드 내 쉬노니, 박나븨처럼, 가녀린 머리, 주사 찍은 자리 에, 입술 을 부치 고 나 는 중얼거리 다. 나 는 중얼거리 다. 붓그러운 줄도 몰으는 多神敎徒 와도 가티. 아아, 이 애 가 애자지게 보채 노나. 불 도 약 도, 달 도 업는 밤 아득 한 한울 에 는, 별 들 이 참벌 날으 듯 하여라. ― 「발열(發熱)」167), 전문 석탄 속에서 피여나오는/太古然히 아름다운 불을 둘러/십이월밤이 고요히 물러앉다.// (…중략…) 어는 마을에서는 紅疫이 躑躅처럼 爛漫하다. ― 「홍역(紅疫)」,168) 일부 “이 애 몸이 또 달어 오르 노나”라는 「발열」의 읊조림에서 알 수 있듯, 정지용에게서 아픈 아이는 몸에 열이 오르는 열병(熱病)에 시달리는 것으로 그려진다. 열병에 걸리면 몸 안팎의 온도차가 커지기 때문에 평소보다 쉽게 추위를 느낀다. 그래서 방을 훈훈하게 데워 불의 열기로 몸의 열기를 다스 려야 하는 역설이 발생하며, “불 도 약 도” 없는 밤은 더욱 안타깝다. 정지 용은 이러한 역설에서 아이의 신열(身熱)과 ‘숯불’ 따위의 불이 결합할 수 있음을 목격한다. 열병 걸린 아이도 불의 일종인 것처럼 서술된다. 「홍역」은 시기상 중기에 속하지만 초기의 모티프를 차용해온 초기적 작 167) 『조선지광』 69호, 1927.7. 168) 『가톨릭청년』 22호, 1935.3. - 80 - 품이다. 그러나 아이와 불의 결합을 보다 광활한 ‘풍경’으로 펼쳐놓는 수사 법은 초기보다 더욱 노련해진 ‘변용술’을 보여주며, 이후 「백록담」의 1연 을 구성하는 데에 크게 영향을 미쳤다. “태고연히 아름다운” “석탄” 불은 차가운 “십이월밤”을 물러앉게 하며 내적 공간을 지켜낸다. “십이월밤”은 시간을 가리키는 표현이지만, 석탄 불 주위를 둘러싼 하나의 ‘공간’인 것처 럼 서술되었다. 정지용은 석탄 불이 타오르는 방 안 풍경에 대한 묘사에서, 별안간 “홍역이 척촉처럼 난만”한 어느 마을에 대한 원경으로 시선을 이동 시킨다. 홍역은 주로 아이들이 걸리는 전염병이면서 온몸에 빨간 반점이 나 타나는 현상과 발열을 동반한다. 철쭉(척촉)처럼 난만(爛漫: 꽃이 활짝 피어 화려함.)169)하다는 것은 이러한 아이 한 명의 몸을 묘사한 표현일 수도 있 고, ‘전염병’의 맥락을 살려 마을 전체에 마치 꽃이 핀 것처럼 홍역 걸린 아 이들이 흐드러져 피어있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 마을 아이들에게 전염병이 도는 비극적 상황을 아름다운 시각적 이미지로 승화시키는 은유 체계는 당 시 정지용이 도달했던 시적 경지를 보여준다. 그러나 여기에서 그치지 않 고, ‘난만한’ 홍역 걸린 아이들의 아름다움은 석탄 불의 ‘태고연한’ 아름다움 과 의도적으로 연결되고 있다. 「홍역」은 역설적인 결합이 산출해낸 아름 다움을 ‘방 안’이란 협소한 공간을 넘어, 마을 전체가 담긴 풍경화 속으로 확장해 놓는다. 이후 중기-후기로 이어지는 정지용의 시적 도정(道程)은 이 ‘불씨를 어떻 게 지켜낼 것인가’를 일관적인 주제로 삼고 있다. 특히 초기 시편에서 그것 이 ‘아이’와 결합되는 양상은, 정지용이 이들 결합체를 지켜주는 보호자 역 할을 자처하지만 역으로 그들로부터 삶을 이어나가는 원동력을 얻기도 함을 보여준다. 이 결합을 발견함으로써 「황마차」에서 노출된 그의 ‘내향’ 욕망 이 안정적으로 충족되고, 또 ‘불씨를 살려내는 것’으로서의 ‘시 쓰기’를 추동 하는 힘이 생겨나기 때문이다. 초기의 정지용은 이러한 꿈틀거리는 힘을 아 169) ‘난만(爛漫)하다’는 정지용이 즐겨 쓰는 표현 중 하나다. 대표작 「백록담」 (『문장(文章)』 3호, 1939.4.)에도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바람이 차기가 함경도끝과 맞서는 데서 뻑국채 키는 아조 없어지고도 팔월한철엔 흩어진 성 진(星辰)처럼 난만(爛漫)하다.” 즉 정지용이 쓰는 ‘난만함’의 풍경은 결정화(結 晶化)된 무언가가 반짝거리며 흩어진 모습을 담고 있다. - 8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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