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ikastos
감각적인 모더니즘 경향과 김종태 초기 시편 본문
감각적인 모더니즘 경향, 바다 이미지, 동요 시편 등 여러 측면들이 부각된 가운데 방/집 의 기호는 그동안 충분히 주목되지 못했다. 김종태가 초기 시편에 나타나는 주요 공간이 “안온한 집”이라는 점을 유의미하게 지적했으나, 구체적인 분 석이 뒤따르지는 않았고 ‘집은 외부 세계로 나아가기 위한 공간적 거점’이 라는 원론적인 논의에 그치고 있다. 141) 그보다 정지용에게 방/집이란 공간이 어떻게 시적 공간으로 ‘변용’되는지 에 더욱 주안점을 두어야 한다. 이때 방/집은 많은 경우 ‘불이 피어오르는 따뜻한 곳’으로 표현되는데, 여기서 정지용 시편에서 매우 특징적이라 할 수 있는 일상적 불 이미지의 반복이 발생한다. “숯불”로 대표되는 이러한 140) 예컨대 조선 문단에 공식적으로 데뷔한 일련의 『학조』 수록작들(「카페―·프 란스」, 「슬픈인상화」, 「파충류동물」, 「「마음의일기」에서」, 「서한울」, 「」, 「감나무」, 「한울혼자보고」, 「레(人形)와아주머니」 이상 9편)만 보아도, 다양 한 시 양식을 보여주고자 하는 정지용의 의도가 돋보인다. 이 중 소위 ‘모더니 즘’ 시로 분류될 만한 감각적인 자유시는 3편에 불과하며, 연시조 1편(“시조아 홉首”라 부기하여 게재했으나, 연시조 형식으로 한 표제에 묶여 있으므로 1편 으로 간주함)에 나머지 5편은 동요풍의 시편이다. 게다가 ‘시조, 동요’ 따위의 장르 구분은 정지용이 직접 명시하고 있다. 141) 김종태, 앞의 책, 46~47쪽. - 71 - 불 이미지는 초기 시편에서 특히 높은 빈도로 등장하긴 하지만, 정지용의 시편 전체에서 지속적으로 반복된다고 보아도 무리가 없다. “숯불” 이미지 는 “기름ㅅ불”(「녯니약이 구절」, 「태극선에날니는꿈」 등), “촉불”(「촉불 과 손」, 「밤」, 「삽사리」, 「온정」 등), “석탄”불(「슬픈기차」, 「홍 역」 등) 등으로 다양하게 변주되기도 한다. “숯불”류로 따뜻하게 데워진 방/집 공간에 대한 ‘내향’의 열망은 바깥 상 황과 대비를 이루며 더욱 굳게 다져진다. 이금 지나가 는 느진 電車 가 이이익 돌아 나가는 소리 에 내 조고만 魂 이 놀난 드시 파다거리 나이다. 가고 시퍼 한 화로 가 슬 차저가고 시퍼. 조하 하는 馬太傳五章을 읽으면서 南京콩 이나 먹고 시퍼. 그러나 나 는 차저 돌아 갈데 가 잇슬나구요? (강조: 인용자) ― 「황마차」142) 일부 「황마차(幌馬車)」는 초기 시편 중에서 보기 드문 산문적 문체로 쓰였으 며, 풍경들이 환유적으로 전이될수록 화자의 감정도 변화를 겪는 독특한 병 렬 구조를 특징으로 삼는다는 점은 이미 지적된 바 있다. 143) 시선의 수평적 인 이동에 따라 도회 풍경을 하나하나 감각 속으로 끌어들이는 구성은 이후 정지용의 전체 시편을 통틀어서도 유일한 것이다.144) 이러한 풍경 가운데 ‘따뜻한 화롯가’를 찾아가고 싶다는 화자의 발화는 상당히 직접적이다. 화자는 교토의 번화가145)를 거닐고 있으면서도 ‘따뜻한 142) 『조선지광』 68호, 1927.6. 143) 주영중, 「풍경과 감정의 모호한 당김」, 『다시 읽는 정지용 시』, 77~83쪽. 144) 예외적으로 「유선애상(流線哀傷)」(『시와 소설』 1호, 1936.6.)도 「황마차」와 마찬가지로 산문적 문체의 시며, 도회의 이미지들을 노출시키고 있다. 그러나 「유선애상」은 ‘풍경의 환유적 전이’보다는, 다양한 은유 체계가 몽타주처럼 느 슨하게 얽히며 산문성을 산출한다는 차이가 있다. 권영민, 「정지용의 「유선애상」」, 『문학사와 문학비평』, 문학동네, 2009, 210~213쪽 참조. 145) 정지용은 작품 말미에 “一九二五·十一月·京都”라고 덧붙이며 창작 장소가 교토임을 밝혔다. 조선에 발표되기 1년 전 『동지사대학예과학생회지』 7호 (1926.11.)에 먼저 일본어로 발표된 작품이기도 하다. - 72 - 화롯가’에 대한 애착을 거리낌 없이 드러내며, ‘황마차’는 화자의 그러한 열 망을 충족시켜줄 수 있는 매개체다. 즉 「황마차」에는 혼란스러운 타국의 도회 공간(‘밖’)에서 헤매는 이방인의 자조의식만이 담겨 있지 않다. 이러한 정서의 한편으로는 ‘화롯불을 쬐고 마태복음을 읽으며 남경콩146)을 까먹을 수 있는’ 일상적인 공간(‘안’)을 향한 강렬한 지향이 팽팽하게 맞서 있는 것 이다. “카̇페̇―̇·프̇란̇쓰̇에 가자”라는 선언과 “ 한 화로 가 슬 차저가고 시 퍼”라는 고백은 결국 동일선상에 존재한다. 어떤 공간의 ‘안’으로 향하고자 하는 시적 주체의 애착은 이미 정지용의 최초 시편들에서부터 드러나고 있 다. 여기서 ‘따뜻한 화롯가’는 ‘방/집의 안’으로 확장되어 초기 시편의 주된 배경이 된다. 집은 그 어느 공간보다 ‘내밀함’의 가치를 지닌다. 집은 차라리 하나의 세 계 혹은 우주에 가까우며, 단순한 거주의 공간을 넘어서는 공간으로서의 의 미가 있다. 한 개인의 현재뿐만 아니라 과거 전체가 집에 가득 들어찬다. 바슐라르는 이러한 집의 총체성이 가장 오래된 기억은 물론 ‘태고적 과거’ 까지 상상할 수 있게 하며, 그가 매우 중요시하는 시적 ‘몽상’이 바로 여기 서 시작되는 것으로 보았다. 147) 정지용에게 집 또한 단순한 시적 배경이 아니라, ‘카페 프란스’처럼 그가 상상적으로 구현한 ‘시적 공간’에 가깝다. 정지용의 방/집 모티프가 지닌 특 이점은 그것이 ‘열병(熱病)에 걸린 아이’의 이미지와 곧잘 결합한다는 데에 있다. 「을해시단총평」에서 박용철이 「유리창」을 두고 “어린아들을 잃은 것”으로 단언한 이래로,148) 「유리창」을 위시한 시편들에 나타나는 아픈 김동희는 시에 노면전차가 등장한다는 사실에 근거하여, 「황마차」의 구체적 인 배경을 교토의 데라마치니조(寺町二条) 거리라고 보았다. 데라마치니조는 최대 번화가인 시조보다 좁았지만 도시문화가 집중되어 있던 곳이라고 한다. 김동희, 「정지용과 ‘교토’라는 장소」, 128~133쪽. 146) ‘땅콩’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최동호, 『정지용 사전』, 고려대학교 출판부, 2003, 60쪽 참조. 147) Bachelard, Gaston, 『공간의 시학』, 75~78쪽. 148) 정확한 서술은 다음과 같다. “그가 시를 쓴것은 그가 비애(悲哀)의절정(絶頂)에서서 그의심정(心情)이 민광 - 73 - 아이의 모습은 어린 아들이 사망한 정지용의 안타까운 개인사가 반영된 것 으로 대개 이해해 왔다. 그러나 이숭원의 지적149)처럼 장남 정구관 씨의 인 터뷰를 비롯한 여러 실증 자료들이 혼잡스럽게 섞이면서, ‘「유리창」에 등 장하는 죽은 아이는 누구인가’란 소모적인 논쟁은 확답을 내리지도 못하고 실정이다. 굳이 정지용의 개인사를 동원하지 않더라도, ‘아이’는 본래 정지용이 자주 활용하던 소재였음은 쉽게 알 수 있다. 동요풍의 시편, 즉 동시(童詩) 150)는 정지용의 초기 시편 중에서 의외로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정지용의 동시는 아동문학사적으로 높은 성취를 보여주며, 여러 방면에서 정지용이 아동문학 에 가졌던 관심을 드러낸다. 또한 해방 후 1946년에도 조선문학가동맹 아동 분과위원장으로 추대되었다는 사실은 이러한 관심이 나름 지속적이었음을 말해준다. 다만 그가 “‘동심천사주의’의 정교한 표현자이자 강력한 후원 자”151)였으며 “근대적 아동에 대한 자각을”152) 문학으로 표현했다는 평가는 재고해볼 필요가 있다. 정지용이 이후 본격적인 동시 작가로 나아가지 않은 까닭을 고려해봐야 하는 것이다. (悶狂)하려든때이다. 그는 그의 사랑하는 어린아들을 잃은것이다” 물론 여기서 “그”의 정체가 중요한 쟁점에 놓인다. 문맥상 “그”는 시적 화자 보다는 작가 정지용을 가리킨다고 보는 편이 더 타당하므로, 박용철이 실제 맥 락을 어느 정도 개입시켰던 것은 부정하기 어려워 보인다. 다만 이러한 안타까운 개인사를 박용철이 옆에서 직접 목격했다고 보기는 어 렵기에, 이는 엄밀하게 실증적인 의도를 지닌 언급이 아닐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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