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ikastos
기술과 기교의 차이, 정신의 호흡과 표피성 그리고 경박성 본문
여기서 ‘기술’은 임화는 물론 김기림도 추후 비판하게 되는 ‘기교’ 특유의 표피성과 경박성과 거리가 멀다. 김기림이 직접 밝히고 있듯, 이 기술에는 시인의 “정신의 호흡”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69) 이후 『시론』에서 「시와 인식」으로 개제. 70) 신범순, 「1930년대 모더니즘에서 ‘작은자아’와 군중, ‘기술’의 의미―김기림 시론의 전위적 요소」, 『한국 현대시의 퇴폐와 작은 주체』, 21쪽. - 28 - 시인은 그의 의식에 떠올라 오는 어떠한 몇 가지의 상념을 어떻게 객관화하 고 구상화할까에 최대한도의 노력을 집중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먼저 그 상념 자체를 정돈하는 것이다. 그 과정에 있어서 수많은 단어가 기용되어 시인의 정 신의 입김을 받아가지고 별다른 살아있는 언어로서 그의 목적을 위하여 약동 하게 되는 것이다. 그것이 시의 기술이다. 71) ― 김기림, 「시의 기술, 인식, 현실 등 제문제」 위의 인용에서 “입김”이나 “살아있는”과 같은 수사는 오히려 박용철과 정 지용이 전개한 ‘체험’ 시론에 가까워 보인다. 이러했던 김기림이 ‘기교’를 논 하면서 ‘기술’과의 엄밀한 구분을 간과하고 임화에게 쉽게 공감을 표했다는 점은, 박용철에게는 반드시 비판되어야 할 모습이었다. 기교주의 논쟁의 마 지막 글에 해당하는 「기교주의 설의 허망」(『조선일보』 1936.3.)에서 박 용철은 기교주의 자체의 옹호 여부를 밝히기보다, 김기림이 노정한 논리적 허점을 지적하고 역동적인 ‘기술’의 지위를 복권시키는 데에 주력한다. ‘기 교’를 ‘기술’로 환치하자는 이 글의 주장은 이러한 의미에서 이해된다. ‘기 술’은 ‘기교’에 비해 가치중립적인 술어(術語)일 뿐만 아니라, 김기림이 비평 활동 초창기에 제시했었던 치열한 방법론으로서의 ‘기술’을 환기하는 용어이 기 때문이다. 임화가 기교주의를 비판했던 주된 논리 가운데 하나는 “시적 열정의 전무 (全無)”였다. 적극적으로 현실의 이념을 반영하며 치열하게 시를 써내려갔 던 경향시인들과 달리, 소위 ‘기교파’는 “시의 내용과 사상을 방기”한다는 것이다. 박용철은 ‘기술’ 논의를 통해 이러한 혐의로부터 벗어나고자 한다. 기술(技術)은 우리의 목적에 도달하는 도정(道程)이다. 표현을 달성하기위하 야 매재(媒材)를 구사(驅使)하는 능력이다. 그러므로 거기는 표현될 무엇이 먼 저 존재(存在)하는것이다. 일반(一 般)으로 예술이전(藝術以前)이라고 부르는 표현될 충동(衝動)이 있어야 하는것이다. 71) 『김기림 전집 2』 - 29 - 이것은 강렬하고 진실하여야한다. 바늘끝만한 한틈도 없어야 한다. - 박용철, 「기교주의 설의 허망」72) 위의 인용은 이후 「시적 변용에 대해서」에 나타나는 필연성의 시론을 암시하기도 한다. 시가 ‘매재’, 즉 언어를 통해서 표현해야할 것은 시 이전 에 ‘존재’하는 ‘시를 써야만 한다는 충동’이다. 강렬하고 진실한 충동은 시가 성립되는 선결 조건이 된다. 박용철은 이러한 ‘충동’을 낭만주의적 의미에서 의 충동적 감정으로 이해하지 않는다. 임화와 김기림이 내용-형식이라는 이 분법을 고수하며 두 항목의 긴장 관계로만 시의 성패를 재단했던 것에는 ‘기교’를 곧 ‘형식’과 동일시하는 오류73)가 놓여 있다. 반면 박용철은 오직 ‘시’와 ‘시 이전’을 구분한다. 아직 명확한 결론이 내려지지는 않지만, 그가 보기에 ‘기술’은 얄팍한 형식이나 기교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시 이전’의 영역을 시화(詩化)하게끔 하는 시작(詩作)의 본질이었다. 즉 시적 기술이란 ‘A’가 ‘B’로 바뀌는 변화의 기술이다. 이는 김기림이 지적했던 ‘보들레르의 연금술’과 차라리 가깝다. 기술은 ‘변화’시키는 마력을 지니고 있기에, 시인 은 이 기술과 긴장관계를 유지하며 투쟁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시작은 늘 ‘치열’하다. 시를 쓰기 위해서 기술을 치열하게 구사해야 한다는 박용철의 결론은 오히려 기술(기교) 자체를 치열함의 결여로 보았던 임화의 주장을 뒤집는 것이었다. 박용철은 같은 글에서 기술을 “상적(相敵)한 적수를만나 생사를 겨루는 순간의 검객(劍客)의 칼끝”74)에 비유하며, 기술이란 가벼운 말장난에 불과 72) 박용철, 『박용철 전집 Ⅱ - 評論』, 깊은샘, 2004. (이후 박용철의 모든 산문 은 여기에서 인용) 73) “그러므로 많은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기교라는 단어를 ‘기술’로 대체하고, 그 것을 이론적으로 재정의하는 일이 필요함을 강조한다. 이때 박용철이 염두에 둔 것은 기교를 ‘형식’과 동일시하는 오류를 벗어나는 것이다.” 강계숙, 앞의 논문, 239쪽. 74) 다만 박용철은 이러한 비유에 앞서 “竹友藻風씨의 의견을 따라”라고 덧붙이 고 있다. ‘竹友藻風’은 20세기 초에 주로 활동한 일본의 시인이자 영문학자 다 케토모 소우후우(たけとも そうふう, 1891~1954)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다케토모 소우후우는 정지용이 다녔던 도시샤대학의 전신인 도시샤신학교를 졸업하고 교토제국대학을 거쳐 예일대학, 콜롬비아대학에서도 공부했다고 한 - 30 - 한 것이 아니라 시인에게 사활이 걸린 근본적인 문제임을 다시 한번 강조한 다. 그런데 시인을 ‘검사’로 표현한 은유 체계는 어느 정도 계보를 보이는 것이 흥미롭다. 김기림은 보들레르의 연금술만을 언급했지만, 『악의 꽃』에 수록된 「태양(Le Soleil)」과 같은 시에서는 ‘검술(劍術)’로서의 시 쓰기에 대한 사유가 나타난다. 「태양」의 시적 화자는 햇빛이 미처 닿지 않는 음 침한 곳에서 “환상의 검술”75)을 닦으며 ‘운율(la rime)’, ‘낱말(les mots)’, ‘시구(詩句, des vers)’ 등을 맞닥뜨린다. 그런 점에서 이 텍스트는 시편이기 도 하지만 ‘검사’로서의 시인의 존재론과 ‘검술’로서의 시 창작론을 담은 하 나의 은유적 시론인 것이다. 보들레르를 직접 원용하지는 않았으나 시적 기 술의 문제를 ‘검술’의 시론으로 논쟁 끝에 발전시킨 박용철의 언급은 이후 정지용의 “일개 표일한 생명의 검사” 개념으로도 이어지며 시인을 치열한 존재로 격상시키려는 노력의 한 흐름을 잇는다. 이에 대해서는 2.3.에서 정 지용 시론과 함께 추가로 논의하기로 한다. 그렇다면 시적 ‘기술’이 가져야 할 바람직한 방향은 무엇인가. 흥미롭게도 기교주의 논쟁의 논자들은 가장 이상적인 시의 모습을 ‘시적 종합/전체’에서 찾는다는 공통점을 보이면서도, 여기서 입장이 확연하게 구분되기도 한다. 우선 ‘내용’과 ‘형식’을 분리하는 관점은 역설적으로 그것의 종합을 꾀하고 자 한다. ‘내용 결여’와 ‘형식 편중’은 임화와 김기림이 기교주의를 비판하는 다. 현재 한국에서는 이 작가에 대한 정보가 거의 알려져있지 않아 본고에서 미처 자세한 정보를 확인하지 못했다. 여하튼 박용철은 다케토모 소오후우가 쓴 시론에서 ‘검객’ 비유의 실마리를 얻었을 것이다. 75) 이 표현의 원어는 “fantasque escrime”인데, ‘escrime’은 특별히 운동 종목 인 펜싱을 가리키기도 하므로, “상상의 펜싱” 등으로 번역되기도 한다. 해당 구절을 모두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잔인한 햇볕이 도시와 시골, 지붕과 호밀밭에 더 쨍쨍 내리쬘 때, 은밀한 음행을 가려주는 덧창 달린 오두막집들이 있는 교외의 엣날 동네로 가서 나는 혼자 별나게 상상의 펜싱을 연습하며 돌아다닌다. 우연한 운율이 있는지 모퉁이마다 냄새를 맡으면서, 포석에 발이 걸리듯 낱말에 걸려 비틀거리면서, 간혹 오래 전부터 꿈에 그리던 시행들에 부딪치면서,” Baudelaire, Charles, 「태양」, 『악의 꽃』, 공진호 역, 아티초크, 2015. 178쪽. - 31 - 주된 논거로서 작용한다. 계급주의자인 임화에게 내용-형식의 변증법적 종 합은 필연적 결론이었을 터였고, 김기림은 후에 ‘전체로서의 시’ 개념으로 정립하는 시론을 예비적으로 언급해둔다. 오늘의 편향화한 기교주의는 벌서 전체로서의 시에 종합되기를 요구하고 잇 지 안는냐? 그것은 한 질서에의 의지다. “전체로서의 시는 엇던 것이며 기술(技術)의 각 부분은 그 속에서 엇더케 통일될 것이냐? 또한 그러한 전체로서의 시의 근저가 될 정신은 무엇일가?” 이것은 따로히 한 개의 논문의 제목이 될 것이다.
'국어국문학, 풍월을 읊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신시, 진보적인 생명을 지닌 독특한 낭만주의 방법 채택 (0) | 2020.09.02 |
---|---|
시의 전체성과 시의 순수화 그리고 기교주의, 현대시의 새로운 과제 (0) | 2020.09.02 |
임화, 김기림의 기교주의 비판을 논쟁적으로 재론 (0) | 2020.09.02 |
정지용 시편과 산문의 정신주의적 측면과 시적 수사법 (0) | 2020.09.02 |
릴케의 내면과 고독한 자 그리고 바슐라르의 시인의 몽상 (0) | 2020.09.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