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ikastos
박용철의 시론, 기억과 참을성, 필연성 그리고 체험 본문
그러나 이러한 기억을 가지므로 넉넉지 않다. 기억이 이미 많아진때 기 억을 잊어버릴수가 있어야한다. 그러고 그것이 다시 돌아 오기를 기다리는 말 할수없는 참을성이 있어야한다. 기억만으로는 시가 아닌것이다. 다만 그것들이 우리속에 피가되고 눈짓과 몸가짐이 되고 우리 자신과 구별할수없는 이름없는 것이 된다음이라야 ─ 그때에 라야 우연히 가장 귀한시간에 시의 첫말이 그 한가운대서 생겨나고 그로부터 나아갈수있는것이다. ②의 첫 문단은 릴케의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의 한 구절을 인용 하고 있고, 둘째 문단에서는 『말테의 수기』의 한 대목 전체를 번역하여 직접 인용하였다. 주로 ‘필연성’, ‘참을성’, ‘체험’ 그리고 ‘기억’ 등 서두에 밝힌 체험 시론과 관련된 내용 위주로 발췌되어 있다. 상당한 비중의 인용 이므로, 자신의 시론이 릴케에게 빚진 것임을 공공연히 드러냈다고 할 수 있다. 그동안 박용철의 시론은 A.E. 하우스만으로부터 상당한 영향을 받은 - 42 - 것으로 지적되어 왔으나88) , 가장 중요한 평론이라 할 수 있는 「시적 변용 에 대해서」에서 결국 하우스만 대신 릴케를 지향점으로 삼았다는 점을 간 과해서는 안 된다. 첫 문단에서는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의 ‘고독’과 ‘필연성’의 주 제를 거의 그대로 서술하고 있다. 그보다는 다음 대목에서 『말테의 수기』 를 통해 박용철이 시를 쓰기 위한 ‘체험’과 ‘기다림’을 서로 연결한다는 점 이 주목을 요한다. 『말테의 수기』는 릴케가 자신의 파리 체류 경험을 기 반으로, ‘말테 브리게’라는 가상의 덴마크 시인을 화자로 상정하여 쓴 유일 한 장편소설이다.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강요되는 근대 도시 파리 한복판에 서 말테는 자신의 내면에 잠든 기억들을 ‘수기(手記)’의 형식으로 되살려낸 다. 인용한 부분에 따르면, 박용철이 앞에서 말한 ‘참을성 있게 기다리는 것’은 가만히 있는 수동적 자세를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오히려 모든 것 을 ‘체험’하여 내면에 시를 쓰기 위한 재료들을 모으는, 능동적인 행위인 것 이다.89) 박용철은 일찍이 다른 지면에서 롯테 아담의 「문학에잇서서의 체 험과 세계관」(『문학』 제1호)이나 하우스만의 「시의 명칭과 성질」(『문 88) 대표적으로 다음과 같은 선행연구에서는 박용철이 언급한 해외의 이론가들을 열거하면서, 그 중 릴케의 중요성이 가장 떨어지는 것으로 치부한다. “『박용철 전집』에서 거명되고 있는 외국 이론가로는 E.A. 포우, A.E. 하우스 만, R.M. 릴케 세 사람이 있다. 물론 박용철이 그들에 대해 언급하였다고 해서 직접적인 영향관계로 파악하고자 하는 것은 섣부른 오류를 범할 수 있는 위험 성을 내포하고 있지만, 그러나 포우와 하우스만의 경우 그들의 이론이 박용철 의 시론과 실증적으로 대비된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띤다고 하겠다.” 김동근, 「박용철 시론의 변용적 의미」, 『한국언어문학』 34권, 한국언어문학 회, 1995, 14쪽. 89) 릴케는 「체험」이란 산문에서, 체험이 선사하는 마술적인 힘을 다음과 같이 서술한 바 있다. 이 텍스트에 따르면 체험이란 철저히 내면적인 것이며, 삶의 순간 하나하나를 단단한 씨앗처럼 견고하게 만들어주는 것이다. “그는 점차 자신의 내부로 끊임없이 흘러 들어오는 것이 내면에서 불러일으 키는 작용에 놀라며 감동마저 받았다. 그는 그보다 더 조용한 움직임으로 마음 이 채워진 적은 없었다고 생각했다. 그의 육체는 마치 영혼처럼 다루어졌으며, 육체의 상황이 그처럼 명료하지 않은 경우에는 느낄 수 없을 정도의 미세한 영향을 받아들일 수 있는 상태가 되었다.” Rilke, R.M., 「체험」, 『릴케 전집 13: 예술론(1906~1926)』, 전동열 역, 책세 상, 2001. - 43 - 학』 제2호) 등을 번역하여 체험 시론에 대한 공명을 드러낸 바 있다. 90) 「시적 변용에 대해서」는 그러한 관심이 릴케로 인하여 ‘변용’과 ‘무명화’ 의 사유로 꽃을 피운 것이다. ③ 열줄의 좋은 시를 다만 기다리고 일생(一生)을 보낸다면 한줄의 좋은 시 도 쓰지못하리라. 다만 하나의 큰꽃만을 바라고 일생을 바치면 아모러한 꽃도 못가지리라. 최후의 한송이 극히 크고 아름다운 꽃을 피우기 위하야는 그보다 적을지라도 덜고을지라도 수다(數多)히 꽃을 피우며 일생을 지나야한다. 마치 그것이 최후의 최대의 것인 것같이 최대의 정열(情熱)을 다하야. 주먹을 펴면 꽃이 한송이 나오고, 한참 심혈(心血)을 모아가지고있다가 또한번 펴면 또한송 이 꽃이 나오고 이러한 기술사(奇術師)와같이. 나는 서도(書道)를 까막히 모른다. 그러면서도 그 서도를 예(例)로 이야기할 욕망을 느낀다. 서도의 대예술가(大藝術家)가 그 일생의 절정에 섰을때에 한번 붓을 둘러서 한글자를 이뤘다하자. 괴석(怪石)같이 뭉치고 범같이 쭈구린 이 한 자(字). 최고의 지성(智性)과 웅지(雄志)를 품었든 한생애의 전체험(全體驗) 이, 한 인격이 왼통 거기 불멸화(不滅化)하였다. 이것이 주는 눈짓과 부르는 손짓과 소근거리는 말을 나는 모른다. 나는 그것이 그러리라는것을 어렴풋이 유추할뿐이다. 이 무슨 불행일것이냐. 어떻게하면 한 생애가 한 정신이 붓대를 타고 가는털을 타고 먹으로서 종이 우에 나타나 웃고 손짓하고 소근거릴수있느냐? 어쩌면 한참만큼 손을 펼때마 다 한송이 꽃이 나오는 기술(奇術)에 다다를수있느냐? 우리가 처음에는 선인(先人)들의 그 부러운 기술을 보고 서투른 자기암시를 하고 염언(念言)을 외이고 땀을 흘리고 주먹을 쥐였다 폈다하는것이다, 거저 뷘주먹을. 그러는중에 어쩌다가 자기암시가 성공이되는때가 있다. 비로소 주먹 속에 들리는 조그만 꽃하나. 고화시중(枯花示衆)의 미소요, 이심전심(以心傳 心)의 비법이다. 이래서 손을 펼때마다 꽃이 나오는 확실한 경지에 다다르려면 무한한 고난 과 수련의 길을 밟아야한다. 그러나 그가 한번 밤에 흙을 씻고 꾸며논 무대위 90) 김재혁, 「박용철의 릴케 문학 번역과 수용에 관한 연구―릴케의 문학이 박용 철의 창작에 미친 영향을 중심으로」, 『독일문학』 46권 1호, 한국독어독문학회, 2005, 32쪽. - 44 - 에 흥행하는 기술사(奇術師)로 올라설때에 그의손에서는 다만 가화(假花)조각 이 펄펄 날릴뿐이다. 그가 뿌리를 땅에 박고 광야에 서서 대기(大氣)를 호흡하 는 나무로 서있을때만 그의 가지에서는 생명의 꽃이 핀다. 시인은 진실로 우리가운대서 자라난 한포기 나무다. 청명한 하늘과 적당한 온도아래서 무성한 나무로 자라나고 장림(長霖)과 담천(曇天)아래서는 험상궂 인 버섯으로 자라날수있는 기이한 식물이다. 그는 지질학자도 아니요 기상대원 (氣象臺員)일수도 없으나 그는 가장 강렬한 생명에의 의지를 가지고 빨아올리 고 받아드리고한다. 기뿐 태양을향해 손을 뻐치고 험한 바람에 몸을 움츠린 다. 그는 다만 기록(記錄)하는 이상(以上)으로 그 기후(氣候)를 생활한다. 꽃과 같이 자연스러운 시, 꾀꼬리같이 흘러 나오는 노래, 이것은 도달할길없는 피안 (彼岸)을 이상화(理想化)한 말일뿐이다. 비상(非常)한 고심(苦心)과 노력이 아 니고는 그생활의 정(精)을 모아 표현의 꽃을 피게하지 못하는 비극을 가진 식 물이다. 시인의 심혈(心血)에는 외계(外界)에 감응해서 혹은 스사로 넘쳐서 때때로 밀려드는 호수가 온다. 이 영감을 기다리지않고 재조보이기로 자조 손을 버리 는 기술사(奇術師)는 드디여 빈손을 버리게된다. ③에서 박용철은 시인이란 이렇게 장구한 체험과 기다림을 거쳐서 “한송 이 꽃이 나오는 기술(奇術)”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고 한다. 흥미롭게도 ①에서 잠깐 언급된 ‘기술(技術)’보다 더 위의 단계에 있는 것으로 동음이의 어인 ‘기술(奇術)’, 즉 ‘기이한 마술’이 제시된다. 박용철은 기교주의 논쟁을 거치면서 김기림이 초창기에 제시했었던 시적 ‘기술(技術)’의 의미를 개념화 하는 데에 성공했으나, 시작(詩作)의 전(全) 과정에는 ‘법칙화할 수 없는 남 는 부분이 있다’고 하며 정확한 해명을 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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